만화책과 고양이의 게으른 마법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연남동 만화왕’
[박은지 객원기자] 한창 ‘먹방’으로 인기를 얻어 하나둘 늘어난 맛집 프로그램을 즐겨 보면서도 한편으론 원망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연히 찾아내 찜해놓고 적당한 시간에 걸어가 밥 먹고 커피 마시던 편안한 동네 맛집이, 어느새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모두의 맛집이 되어버리는 탓에 말이다.
골목길에 꽁꽁 숨겨진 보석 같은 가게를 발견하면 한편으로는 나만 오고 싶어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적당히 알려져 이곳이 오래오래 영업해 주었으면 하는 양가감정이 든다.
연남동도 예전에는 각각의 ‘나만 아는 가게’들이 모여 있던 조용한 동네였는데, 요즘에는 점차 ‘핫’하고 ‘힙’한 동네가 되어가 북적북적해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키가 낮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늘어선 연남동을 걸으면 추억이 바스락 밟히는 것 같고, 좋아하는 가게들은 마치 나의 오래된 연인처럼 특별한 사이인 것만 같은 감성에 젖는다.
‘연남동 만화왕’도 내게 그런 곳이었다. 요즘 만화 카페는 점점 시설이 화려해지고 다양해져간다.
1인 소파나 좌식 테이블부터, 연인끼리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며 만화책을 돌려 읽을 수 있는 동굴형 방까지 갖추고 있는 곳도 있다.
연남동 만화왕은 그렇게 넓고 화려한 공간은 아니지만, 적당히 안락한 공간에서 내 감성에 맞는 만화책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곳이랄까?
사실 처음에 연남동 만화왕을 일부러 찾아왔던 건 여기서 맥주를 팔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잠시 가라앉히고 가볍게 게으름을 즐기고 싶을 때, 쌓여 있는 만화책에 맥주 궁합이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이불 속에서 혼자 먹을거리를 챙겨 놓고 뒹굴거리는 것처럼, 혼자 놀러가 ‘혼술’을 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간단한 먹거리와 맥주가 적힌 메뉴판과 만화책, 거기에 좋아하는 것 한 가지가 더 있다.
연남동 만화왕의 책장과 테이블 사이에서 톡톡히 주인 노릇을 하는 두 고양이들이다. 메뉴판에는 고양이 소개와 함께 고양이를 대할 때의 주의사항이 쓰여 있다(예민한 동물이니 싫어하는 티를 내면 만지지 말아주세요).
만화책을 읽다가 슬쩍 고개를 들면 고양이들이 한껏 유연하게 늘어져 있거나 소파를 넘어 다닌다. 추운 날에는 난로 앞 제일 따뜻한 자리에 누워 가끔 고개만 들어 손님들을 바라본다.
치즈색이 닮아 있는 양팔이와 해팔이는 둘 다 10살이 넘었다고 한다. 양팔이는 애교가 많고 사람이 만져주면 잘 그릉거리는 데 비해 해팔이는 스킨십은 별로라는 확고한 취향. 이래저래 귀찮을 때는 카운터 안쪽의 해먹 침대에 가 누워 있기도 한다.
이곳의 부부 사장님들이 원래 자주 놀던 동네가 연남동이고, 집에 만화책을 몇백 권씩 모으던 마니아였다.
만화방을 열며 원래 소장하던 만화책을 옮겨왔고, 그리 큰 공간이 아니라서 대신 만화책을 되도록 개정판이나 애장판으로 구비해 공간을 절약했다고 한다.
깨끗한 책, 새 책이 많아서 나는 몇 권인가 처음으로 비닐을 뜯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원래 남편 분이 키우다가 결혼 후 만화방에 자리를 잡았다는 두 고양이들도 이 아지트에 금방 적응해 썩 마음에 드는 눈치다.
고양이들은 존재만으로 분위기를 아우르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인지, 고요한 공기와 부드러운 고양이의 몸짓과 내 감성에 맞는 책 몇 권으로 금세 행복해진다.
존재만으로도 즐거운 게으름의 농도가 짙어지는 공간. 가만히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고양이들이, 연남동 만화왕을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마법 같은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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