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집에는 열대어를 키우는 수족관이 두 개 있다. 한 개도 버거운 수족관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필자는 결코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동물을 좋아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족관을 운영하기 어렵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또 동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 뛰어들기도 어려운 분야다. 수족관 운영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왼쪽 2자 수조관에는 주얼 시클리드, 오른쪽 4자 수조관에는 말라위 시클리드들이 있다.

 
수족관을 운영하는 것은 돈이 생기는 일은 아니지만, 수고는 계속 들어가는 일이다. 물론 적지 않게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역동적인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런 수고쯤은 참을 수 있는 일이다.

 

수족관 속의 작은 물고기들은 필자에게 그런 존재다. 귀찮음과 수고스러움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그런 존재
 
수족관을 관리하다보면 다소 오만한 생각도 든다. 아니 불손한 생각이 든다. 마치 창조주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왜냐하면 수족관에 사는 물고기들에 주어진 모든 생활환경은 오로지 필자의 안목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런 기조 하에 운영되기 때문이다. 

 

물갈이 시기, 돌의 종류와 위치,  여과기 청소 상태, 사료의 종류와 급여량 등 물고기 생존에 필수적이며 절대적인 조건들은 주관적 판단과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사람의 생활을 누가 이렇게 관리한다면,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조물주라고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대대적인 수조 청소를 위해 물갈이를 하는 장면

 

필자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치어들을 키운다. 이는 비상사태에도 대비한 계획이었다.

 

만약 급작스러운 질병의 발생이나 물갈이 실패 등으로 큰 수조의 시클리드들이 몰살하는 상황이 생기면, 작은 수조에 있는 치어들을 옮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작은 수조에 주얼 시클리드가 들어가 있지만, 이 녀석들이 성어가 되면 큰 수조로 옮겨 말라위 시클리드들과 합사를 하여 키울 것이다.

 

그리고 작은 수조는 다시 치어들을 키우는 양어장과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일종의 탁아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작은 수조다.  따라서 물고기들의 대(代)가 끊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작은 수조에 주얼 시클리드가 있지만, 언젠가는 큰 수조의 말라위 시클리드와 합사할 예정이다.

 

그러면 우리집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누구일까?

 

지금 키우고 있는 말라위 시클리드의 일종인 옐로우 프린스들은 필자가 대형마트나 전문 매장에서 구입한 고기들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직접 번식시킨 고기들이다. 

 

말라위 시클리들은 입으로 번식을 하는 물고기다. 마우스 브리더라고 불리는 대단히 독특한 방식을 통해 개체수를 늘리는 모정이 무척 강한 물

고기들이다. 

 

물고기들은 자궁이 없어서 새끼를 키워내지 못하고 알을 낳고 번식을 시도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치어들은 다른 물고기의 먹이로 잡아먹힌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말라위 시클리드들은 자신들의 주둥이 속에 작은 치어들을 넣고 다닌다. 그러다가 3주 정도가 지나면 입이 터지고, 턱이 빠질 것 같은 모습이 된다.

 

그런 모습이 보이면 필자는 어미들의 주둥이에서 치어들을 빼낸다. 이런 행위를 흔히 “알을 턴다.”라고 표현한다.
 

내가 자주 놀러가는 모 수족관의 치어들

 

치어를 어미 고기의 입에서 빼내는 장면. 일명 알을 터는 장면

 
우리집 물고기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번식하고 또 번식한 것이다. 지난 십 여 년 동안 이렇게 세대교체를 하면서 물고기들의 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마 4~5대는 흘러간 것 같다.
 

작은 수조의 치어들. 이 녀석들의 거의 대부분은 2012년 가을 큰 수조로 옮겨졌다.

 
1m25cm. 우리집 큰 수조의 길이다. 이 수조는 직접 디자인하고 주문하여 맞춤 제작한 것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래들과 돌도 직접 사서 넣은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변함없이 물고기들을 키우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간혹 이런 의문이 든다. 나는 이들 물고기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존재일까?

 

오만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자신을 창조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주인 정도로도 생각할 수도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같으면 시간 맞춰 밥도 주고, 물도 갈아주는 집사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집 수족관 안에 사는 물고기들은 이런 나의 존재를 과연 인식하고 의식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말 못하는 물고기들에게 그 해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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