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일
나는 5박 7일의 신혼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첫째 고양이 제이와, 입양한 지 겨우 한 달이 채 안 된 둘째 고양이 아리가 있었다. 합사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한창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행은 일상을 두고 떠나는 설레는 이벤트인 동시에 고양이를 두고 떠나는 불안한 시간이기도 했다.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니까 며칠쯤 뭐 어떠냐고 보통 생각하지만, 고양이도 외로움을 탄다.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자잘한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
고양이를 두고 길게 집을 비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택의 기로가 있다. 가장 간단한 건 호텔을 맡기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탁묘를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둘 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합사한 지 이제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두 고양이가 남의 집에서 잘 지낼지도 모르겠고, 또 이제 막 우리 집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을 아리에게 또 환경 변화를 겪게 하는 것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혹여라도, 또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한창 적응하는 중이자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 그대로 두기로 하고, 지인을 총동원하여 하루씩 집에 들러달라고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부탁했다.
나는 신혼여행지에서 밤마다 호텔 와이파이에 매달려 지인들이 보낸 두 고양이 사진을 확인하곤 했다. 애들은 잘 있었다. 언제 봤다고, 집에 온 아무한테나 얼굴을 비비며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두 고양이의 무사를 확인하고, 거의 1년이 지나서 또 집을 비울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시댁 식구들과의 3박 4일 대만 여행이었다.
옷과 세면도구를 대강 챙기다가 꼭 여행지에 도착해서야 몇 개씩 빠뜨린 걸 생각해내는 게으른 여행 준비는 오래된 습성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미리부터 고양이들이 걱정이었다. 온갖 가능성과 가정을 머릿속으로 만들었다 지웠다 했다.
예전처럼 집에 지인들이 들러주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추석 연휴와 얽힌 일정이라 마땅히 부탁할 곳이 없었다. 고양이 호텔에 맡기자니 기운 센 아리가 제 맘에 들지 않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하악질하다가 목이 다 쉴 것 같았다.
더구나 제이는 장기 치료의 경험 탓에 병원 비슷한 곳은 다 싫어했다. 자취하고 있는 동생 자취방에 맡길까도 생각했는데, 밤마다 우다다하며 뛰어다니는 두 고양이에게 너무 좁은 공간일 것이었다.
사실 가장 좋은 방안이 머릿속 한구석에서 오도카니 기다리고 있기는 했다. 내 부모님이 계신 친정집에 탁묘를 맡기는 것이다. 강아지를 15년 동안 키웠던 친정집이라 동물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경험도 있어 흔쾌히 맡아주시겠지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다 못 미더워 좀 불안했다.
고양이를 예뻐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귀찮다고 하는데 자꾸 안거나, 놀아준다고 낚싯대로 얼굴을 건드리는 무신경한 행동으로 애들 힘들게 하는 거 아닌가… 엄마에게 미리 투덜거렸더니 ‘니네 고양이들에게 손 하나 까딱 안 할 테니 데려오라’고 해서 결국 친정집 탁묘 찬스를 쓰기로 했다.
여행 가기 이틀 전날 친정집에 데려갔더니, 제이는 도착하자마자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돌아다니고 아리는 잠시 어리둥절한가 싶더니 이내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무데나 대고 하악질을 했다.
같이 가져간 사료, 캔, 화장실, 스크래처를 세팅하고 엄마에게 주의사항을 열 가지쯤 늘어놓았다. 빨대 껍질 아무데나 두지 마라, 포도 먹으면 큰일 난다, 제이는 빵 냄새를 맡으면 달려드니 조심하고, 밤에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데 그냥 놔둬라, 사료 양은 이만큼, 모래는 이렇게….
실컷 잔소리를 해놓고 하룻밤을 같이 자고 나올 때쯤에는 둘 다 그럭저럭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신랑은 요란한 고양이 탁묘 과정을 지켜보고 약간 기가 막힌 듯했다. 고양이에게 너무 유난스러운 것 아냐?
난 나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아이를 낳으면 쿨한 엄마가 되리라 여겼던 짐작이 벌써 틀린 걸까? 반쯤 그 말에 동의하면서, 이 정도 유난스러움도 없는 신랑이 도리어 얄밉기도 했다.
워낙 예민한 동물이다 보니, 고양이의 습성을 이해할수록 고양이의 습성을 모르는 사람에게 탁묘를 맡기기 어려워지는 걸 어쩌겠는가. 부탁하는 주제에 주의사항을 열 개쯤 늘어놓아도 부족한 걸. 특히나 어릴 때 자식이 아프면 엄마가 오냐오냐 키우게 되는 마음을 나는 벌써 좀 이해할 것도 같았다.
물론… 내 걱정과는 별개로 친정집에서 지내는 동안 제이와 아리는 창밖이 잘 내다보이는 베란다 자리가 썩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나중에 꼭 창문 잘 보이는 집으로 이사하자, 약속하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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