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에게 키다리 아저씨는..
우리집에는 열대어를 키우는 수족관이 두 개 있다. 한 개도 버거운 수족관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필자는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동물을 좋아하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수족관을 유지하려면 게을러서는 안되며, 동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도 안된다. 수족관을 귀중한 생명체들의 살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 아닌 인테리어의 일부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열거한 이유는 수족관 유지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과 인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찮고 까다로운 수족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모든 귀찮음을 보상하고도 남는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물고기들의 움직임은 한순간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우리집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필자에게 그런 존재다. 귀찮음과 수고스러움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그런 존재다.
수족관을 관리하다보면 다소 오만한 생각도 든다. 마치 필자가 창조주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생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수족관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생활환경은 오로지 필자의 안목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런 기조 하에 운영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어(成魚)뿐만 아니라 치어(穉魚)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다. 치어를 키우는 이유는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며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함이다.
만약 급작스런 질병의 발생이나 물갈이 실패 등으로 큰 수조의 말라위 시클리드들이 모두 죽어 버리는 상황이 생기면 큰 수조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수조에 있는 치어들을 옮길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집에서 물고기들의 대가 끊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말라위 시클리드가 필자가 키우고 있는 열대어다. 이 열대어의 고향은 아프리카 말라위 호수가 고향이다. 그런데 이 열대어들은 대형 마트나 전문 매장에서 구입한 고기들은 아니다.
이 물고기들은 모두 필자가 직접 번식시킨 녀석들이다. 말라위 시클리드는 입으로 번식하는 물고기다. 마우스 브리더라고 불리는 대단히 독특한 방식을 통해 개체수를 늘리는 모정이 무척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류는 포유류와는 달리 자궁(子宮)이 없다. 그래서 수많은 치어들 대부분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말라위 시클리들은 어미의 입 속에 작은 치어들을 넣고 다닌다.
그러다가 3주 정도가 지나면 어미의 입이 터지고 턱이 빠질 것같은 모습이 되고 만다. 그 시점이 되면 필자는 치어들을 어미로부터 빼낸다. 이런 행위를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은“알을 턴다”고 말한다.
우리집 열대어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번식하고 또 번식한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렇게 세대교체를 하면서 우리집 물고기들의 명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마 4~5대는 이렇게 흘러간 것 같다.
그런데 간혹 이런 의문이 든다. 필자는 이들 물고기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일까? 이들에게 필자는 창조주일까, 아니면 그냥 주인일까?
그것도 아니면 시간 맞춰 밥도 주고 물도 갈아주는 인심 좋은 키다리 아저씨일까? 만약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일까? 물고기들은 이런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의식할까? 말 못하는 물고기들에게 그 해답을 듣고 싶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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