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 같은 학문 수의학
[노트펫] 수의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전쟁같은 6년을 보내게 됩니다.
일반적인 학과에 비해 높은 요구학점, 수시로 치러지는 각종 시험, 쏟아지는 과제물, 치열한 경쟁 등에 눈코뜰 새 없는 한 학기를 보내게 되기 십상이죠.
그런데 사실 수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전쟁과 함께 발달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분야에 전쟁이라니, 좀 섬뜩하지만 사정은 이렇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길게 놓고 생각하면 반려동물, 즉 평생 함께 하는 동물의 개념이 성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동물은 보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키우는 가축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강아지도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지금과 같은 사회적인 위치라고 보기는 어렵고,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동물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르는 동물들이었죠.
네, 바로 전쟁의 무기이자 운송수단이었던 말, 그리고 식량자원으로 사용되었던 소와 같은 동물들이 주인공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기병부대의 핵심인 말은 탱크나 총기와 같은 현대의 기계 병기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말로 소중한 전략자원이었습니다.
말의 중요성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었습니다.
고대 인도의 문서 가운데에도 말의 눈을 수술하는 기록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고려시대 후기 때 신편집성우마의방(新編集成牛馬醫方)이라고 하는 수의학 관련 서적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수의학 관련 노하우를 수집해 말과 소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1762년 프랑스에 최초의 근대화된 수의과대학이 클로드 부르 (Claude Bourgelat)에 의해 설립되며 이후 런던, 보스턴 등지에 수의과대학들이 설립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동물 역시 말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과 이후의 남북 전쟁에서 육군의 군마들이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이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수의사라는 직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말들은 군대에서도 점점 전투 그 자체보다는 행사를 위한 목적으로 주로 의장대에서 관리되고, 사회에서도 경마 내지는 승용마로서의 활용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세계적으로 반려동물 문화가 빠르게 성숙해 나감에 따라, 수의학도 사회적인 변화에 발맞추어 말과 소보다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죠.
그렇지만 수의학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거기에 전쟁이 있었고, 전장을 가로지르는 기병으로서 말의 필요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명의 살상을 위한 동물의 치료로부터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명의 보호이자 동물의 생명을 위한 치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수의학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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