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
나는 어릴 적에 `곰'같다는 소릴 어머니한테서 들은 적이 많다.
미련 곰탱이. 몸이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아프다는 소릴 안했으니 말이다.
그건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 흔히 얘기되는 ‘사내대장부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사내대장부가 그깟 일로 울면 쓰나’ ‘남자는 씩씩해야지. 아파도 꾹 참고’라는 비주기적 세뇌효과 말이다.
요즘에야 그런 말들이 아이에게 심리적 스트레스를 준다는 둥, 또 다른 성차별의 하나라는 둥 여러 가지 논란이 되지만 옛날에는 너무도 당연한 멘트였었다.
그런데 그 ‘대장부 콤플렉스’가 아이를 낳고 난 지금도 계속될 줄이야.
난 어느 편이냐 하면 아이가 조금 다쳤다고 야단스레 호들갑을 떠는 여인네들을 보면 왠지 심사가 편하질 않았다.
조금 긁히거나 멍든 정도 가지고 이웃들과 언성을 높인다든지 동네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을 찾아다닌다든지 하는 행동이 다 극성맞은 치맛바람의 시초라고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음식점 의자에서 추락하며 팔을 바닥에 짚었다.
놀라서 잠시 울다 그치기에 얌전히 앉아있지 않다고 야단한번 치고 뭐 괜찮겠지 하는(조금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맛있게 다 먹고 천천히 집으로 왔다.
하지만 집에 온 후 아이엄마는 조용히 아이가 기는 모습을 살펴보다 비명을 질렀다.
다친 팔을 짚고 기려고 할 때마다 엎어지며 킹킹대는 것이었다.
그제야 사태를 눈치 챈 나는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뼈가 꺾여단다.
응급실에서 깁스를 하고 돌아오면서 난 후우~ 긴 숨을 내쉬었다.
나만 있었으면 뼈 부러진 줄은 전혀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을 거다.
‘곰’같은 아빠가 정말 곰 같은 짓을 저지를 뻔 했다.
미안하구나, 아들아.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아이야말로 ‘곰’같은 아이 아닌가?
‘사내대장부 콤플렉스’를 가지기엔 아직 턱도 없는 어린 애가 팔이 부러졌는데도 울지도 않고 놀고 있었다니.
미련곰탱이 아냐?
- 2015/12/31 14:23:02
- 언제 알려주셨는데 이제야 들렀네요. 홈피에 유익하고 재밌는 볼거리가 많아요. 저희애들 성화대로라면 고양이든 강아지든 한마리 키우면서 자주 들락거릴텐데 햄스터 한마리로 만족하라고 달래는 중이네요. 책도 잘 읽었어요. 소설을 통해 시대상을 분석하는 부분 좋던데요. 자발적 아침이 없는 삶?!도 훌륭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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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31 22:00:58
- 오.. 들러주셨군요.. 책까지 읽어주셨다니 더없이 감사합니다~^^ 행복 가득한 새해 되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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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31 14:23:44
- 번창하시길 바래요~!^^ -안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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