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8년 전 초겨울 어느날이었다.
보통 애견 미용을 하는 이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가위 연습을 위해 강아지를 키우는 경우가 흔하다. 이쪽 분야에 발을 들이는 이들은 도그쇼에 한 번 나가보겠다는 야심(?)을 갖기 마련인데 나도 비슷했다. 그런 생각에 푸들 수컷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일에 치이다보니 도그쇼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그 녀석이 예뻐서 종견용으로 쓰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문제의 그날, 지인이 슈나우저 암컷의 미용을 맡기러 숍에 들렀다. 다른 손님이 맡긴 강아지 미용에 정신이 없던 차에 무심코 그 둘을 같은 울타리에 넣어 버렸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깽!'하는 소리에 뭔일이지 하면서 나가봤다. 아 그런데 이런,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둘이 글쎄 눈이 맞은거다. 응큼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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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푸들 녀석이 아직 어려서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으. 교배하는 법도 가르치냐고? 둘을 같은 방에 집어 넣는다고 짝짓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교배법을 아는 수컷은 암컷이 오자마자 바로 "넌 이제부터 내 여자다!"하고 점을 찍는다. 동네 용어로는 '선수'라고 한다.
어쨌거나 눈에 불이 확 켜졌다. 정신 없이 뛰쳐 나가 푸들을 안아 올렸다. 그런데 슈나우저까지 딸려 올라 오는 게 아닌가. 이것들이......
솔직히 아주 짧은 시간이었기에 설마했다. 미용이 마무리된 뒤 지인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은 해줬다. 지인도 그런가 보다 하고 갔는데 한달 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다. 한 달쯤 지나니 유두가 부풀어 오르고 배도 옆으로 불룩해지기 시작하더란다. 그날 푸들이 임신시킨 거 맞지 않느냐는 거지 뭐.
다행히 지인도 이 계통에 있다 보니 좋게 마무리 짓기로 했다. 임신 뒤 두 달이 지나 새끼들이 나왔다. 네 마리였다. 생긴 것은 영락없는 슈나우저였는데 털이 푸들이었다. 나와 지인이 두 마리씩 책임지고 서둘러 분양키로 합의를 봤다.
애들을 분양 보내기에 앞서 지인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분양을 보낼 때까지 누가 양육비를 낼 것이냐였다. 내 책임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방심하고 한 울타리에 넣었으니. 물론 지인 분이 슈나우저 암컷이 마법에 걸렸다고 말을 해줬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양육비는 내몫이었다. 두달 치 사료는 물론 산후조리 잘 하라고 갖은 간식을 제공했다. 네 마리의 어미다보니 숍에서 간식들이 줄어드는게 눈에 보였다.(ㅠㅠ)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어찌 보면 좋지 않게 세상에 태어난 애들이다보니 그 두 달을 보면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났다. 성의 표시나마 분양해 간 분들에게 배냇털 깎기는 서비스로 해드렸다.
숍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키우는 아이가 암컷일 경우, "마법에 걸렸다"라고 말씀을 해 주신다. 이렇게 말을 해줘야 이런 황당하고 당황스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부디, 숍이든 어디든 갈 때 강아지가 그렇다면 반드시 말씀을 해달라고요. [글쓴이/ 전광식 전 하안애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