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A씨는 재작년 키우던 13살 반려견을 떠나 보냈다. 그가 찾은 곳은 반려견 화장장. 경기도 모처에 있는 그 화장장은 고속도로 주변이라 소란스럽고, 가축 농장이 여러 곳 있어 냄새도 심하게 났다. 또 공식으로 신고된 곳도 아니었다. 10여 년간을 키웠던 아이를 떠나 보내면서 환경도 좋지 않고 눈치를 봐가면서 보내야 하는 것인지 한동안 가슴에 남았다.
지난 1월 펫팸족을 분노케 한 소식이 전해졌다. 지자체에 정식 등록된 동물 화장장에서 화장을 의뢰받은 반려동물 사체들을 한 데 모아 화장한 뒤 그램수 만큼을 담아 유골이라고 보호자에게 건네줬다는 내용이었다. 전국적으로 정식 등록된 동물 화장장은 13곳. 그런 곳조차도 돈 앞에 그런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데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지난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열린 동물보호 청책토론회 현장. 동물 보호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 가운데 반려동물 장례산업도 주요 이슈가 됐다. 보호자들은 장례시설을 늘려줄 것을, 사업자들은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원순 시장은 이에 "지금 파주에 가면 시립묘지가 있지 않느냐"며 "그안에 있는 공간을 (동물묘지로) 쓸 수 있는지 적극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반려동물 장례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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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
11일 경기연구원의 '반려동물 현황과 주요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7.9%가 반려동물 사체 처리를 위한 방법으로 전용 소각로나 공동묘지 등 지자체 공공처리시설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동물병원에서 처리는 20.9%, 장묘사업자에 의한 처리는 18.8%, 개인적으로 매장은 9.5%, 종량제 봉투에 처리는 2.6% 순으로 나타났다. 이미 보호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사체 처리를 위해 공공시설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에 접어든 현재 우리나라는 이제갓 반려동물 사체를 쓰레기로 처리하던 상태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합법적 처리방법이라고는 병원에 갔다주면 병원이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처리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을 정도다. 현재 법상 일반가정에서 발생한 반려동물 사체는 생활폐기물로, 동물병원에서 발생하는 사체는 의료폐기물로 처리배출토록 하고 있다. 동물장묘업을 통해 처리되는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의 예외를 적용받고 있다.
이미 100년의 역사가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반려동물 산업이 급팽창중인 중국에서도 반려동물 묘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만 600여 개의 반려동물 묘지가 있다. 대부분 비영리 단체에 의해 기부금 등을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거나, 주정부에서 공공으로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1000만 마리가 사망하는 중국은 베이징 창핑, 다싱 등의 교외에 반려동물 전용 묘지가 잘 발달돼 있고, 매장에서부터 수목장, 박제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장례비용으로도 적게는 700위안(약 12만3000원)에서 4만 위안(약 705만원)까지 다양하며, 높은 장례비용에도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장례 서비스의 발달은 보호자에게 안도감을 주고, 환경을 보호하며,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펜실베니아 힐크레스트-플린 장례식장은 사람을 위한 장례식장에 더해 2006년부터 반려동물 장례식 서비스를 도입한 뒤 매년 25%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반려동물장의사 역시 직업으로서 각광받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초반 애견 붐이 불었던 탓에 그 당시 태어난 반려동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에 어느덧 접어 들었다. 최근 노령견의 건강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펫팸족 1000만 시대 진입과 함께 이런 조건을 감안해서라도 장례 시설 확충과 서비스 발달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임 경기연구원 생태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정식 등록된 동물장묘업체 만으로는 매년 죽음을 맞이하는 반려동물을 처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반려동물 사체 회수체계 마련과 함께 화장시설 확보 등 공공처리시설의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