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 전시, 혜진 작가
구묘가드2, 1102*74cm |
[노트펫] 남극의 펭귄들이 빙하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새끼를 품듯 고양이를 품고 있는 모습을 잠시 물끄러니 바라본다.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도 뭐가 심기가 불편한지 고양이 특유의 부루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 한참 시선이 꽂힌다.
저 뒤쪽 멀리에도 펭귄인 척 고양이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고양이 민화를 그리는 혜진 작가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더 애정한다는 이 그림, 왠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어도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듯 지루하지 않은 것은 민화의 특징일까, 아니면 고양이의 매력일까?
남극 67*83cm |
북촌에 있는 JY art 갤러리에서 고양이 작가 다섯 명이 뭉쳐 ‘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 전시를 하고 있다. 12월 말까지였던 전시가 1월 10일까지로 연장되었다(월요일 휴무, 10일 철수).
그중 조선시대의 벽에 걸려 있었을 법한 그림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민화를 그리는 혜진 작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왜 고양이를 민화로 그리기 시작했을까?
“저는 원래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고양이 민화를 그려야겠다고 특별히 결심했던 것은 아닌데, 그냥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동물을 자주 낙서하듯 그리곤 했습니다. 특히 고양이를 좋아해서 대학에 와서는 일러스트로 고양이 캐릭터 같은 것을 자주 그렸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접한 모란도 한 점에 반하면서 민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민화 속에 고양이를 녹여 넣기 시작했고요. 방식은 달랐지만 늘 고양이를 그려왔던 것 같아요.”
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했던 그림으로, 주로 실용을 목적으로 그려지며 익살스러운 표현이 많았다. 소재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호랑이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그림은 교과서에서라도 한 번씩 접해봤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도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당연한 듯 함께해 온 동물이기 때문인지, 민화의 전통적인 느낌과 잘 어우러지는 듯하다.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민중의 그림이라는 점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지와 색감의 ‘자연스러움’이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닥나무의 껍질에서 온 한지에 치자와 커피 등으로 색을 내 반수를 하고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색인 황토와 대자는 대지의 색이거든요. 그러한 것들이 합쳐져 그림을 그렸을 때 자연스러움과 포근함,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제가 민화에서 느끼는 큰 매력 중에 하나입니다.
고양이를 그릴 때는 고양이의 유연한 몸체에서 오는 아름다운 곡선을 때론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특히 고양이의 다양한 표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가진 다채롭고 풍부한 표정을 잘 담아내어 이 사랑스러운 존재가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며 살아왔다는 것,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묘접도 1, 2, 3 35*30cm |
늘 고양이를 그려왔다는 혜진 작가는 여섯 마리 고양이들과 묘연이 닿았다. 첫째 철수는 어느덧 16살이 되었고, 둘째 락군은 항상 집사의 주변을 맴돌고 있어 그림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셋째 꽃순이와 다섯째 꼬꼬는 길냥이 출신으로 만났는데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넷째 호돌이는 집에서 코믹 담당이란다. 막내 구구는 작년 한국 고양이의 날 9월 9일에 구조했다.
개인적으로 특히 애정이 가는 작품 ‘남극’ 안에서도 작가 자신이 가고 싶은 남극에 반려묘들을 대신 여행 보냈다. 그림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상상 속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남극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단다. 보는 사람까지 왠지 느긋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혜진 작가의 그림은 실제로도 비교적 천천히 완성된다.
“크기나 디테일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좀 천천히 작업하는 편이에요. 한지에 그림을 옮기면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스케치에서도 공을 들이고 종이를 염색하거나 초를 뜨거나 무엇 하나 실수가 있으면 수정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작업합니다. 채색의 경우도 한두 번에 채색을 끝내는 것보다 여러 번 색을 스미듯 천천히 올려 주는 것이 저의 취향입니다. 5-6호 정도의 작은 그림은 대략 10일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사방탁자캣타워 157*64cm |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민화의 과정과 유연한 곡선의 게으른 고양이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또 그림을 한참 멍하니 들여다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혜진 작가의 2018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일단 1월 10일까지 연장된 ‘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 전시를 잘 마무리 할 예정이고요. 저희 꽃순이 꼬꼬 호돌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길고양이가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그림으로 무언가 크게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그만큼의 욕심도 없구요^^)
한국의 전통문화가 지루하지만은 않고 얼마나 재미있고 값진지, 또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늘 우리와 함께 살아온 동물인지 표현하고 싶어요. 대중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더 선한 방향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