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보호소에서 입양해 우리 집에 온 지 약 열흘 만에, 달이가 자꾸 한쪽 눈만 감고 좀처럼 제대로 뜨지를 못했다.
바로 며칠 전에 다른 일로 병원에 갔을 때 "달이가 눈에 자꾸 눈곱이 끼는데 한번 봐주세요" 해서 선생님이 눈을 봐주었고, 별 문제 없으니 눈곱만 잘 떼주라고 해서 눈곱은 일시적인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눈을 아예 못 뜨고 그쪽에서만 자꾸 눈물이 흐르는 게 보이는 것이었다.
혹시 결막염인가? 합사가 아직 안 되어 고양이들을 격리하느라 방 안에 화장실 하나를 넣어 놓았는데, 그 때문에 모래 먼지라도 있었나?
하지만 오래 쓰는 동안 여태 아무 문제없었던 모래인데…….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결국 시간이 좀 늦었지만 병원에 가기로 했다.
고양이 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으면 어차피 밤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사람 몸이 아플 때는 그냥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자연 치유를 기다려볼 수 있는데, 고양이는 그러는 사이에 어딘가 더 악화될까봐 항상 마음이 급해진다. 어쩌면 경험에서 온 교훈일지도 모른다.
병원에 앉아 조금 기다렸더니 곧 누군가 달이 이름을 불렀다.
밤 11시로 시간이 늦어 늘 계시던 원장님이 안 보이고 처음 보는 선생님이 진료를 봐주셨다.
한참 이것저것 설명하다가 결국은 애매하게 결막염 증상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 안약 하나만 처방을 받았다.
기분 탓인지 마음이 썩 개운치가 않았다. 아마 내가 수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3만 원이나 야간 진료비를 추가로 내며 받은 처방인데도 찜찜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어쨌거나 달이의 눈에 안약을 넣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달이의 눈이 부어 있고 눈물 자국도 보였다.
하루 정도 약을 넣고 지켜보면 나아질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집사로서의 감이 그건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안약만으로 좋아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병원에 전화해서 평소 믿고 진료를 보던 수의사 선생님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택시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선생님은 달이를 보자마자 안타까운 목소리로 "보호자님, 아무래도 허피스인 것 같아요" 하셨다.
말로만 듣던 허피스를 만나게 되다니. 호흡기 증상이 없는데도 허피스일 수가 있느냐고 묻자, 꼭 호흡기 증상이 동반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눈이 부어 있고 눈물이 흐르는 다른 허피스 고양이들의 사진도 보여주셨다.
어린 고양이들이 허피스에 걸려 고생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내가 걱정하는 얼굴을 했다.
"괜찮은 거예요?" 죽을 병 선고라도 들은 것처럼 오버했더니(……) 선생님이 5일치 약을 지어주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달랬다.
허피스는 완전히 낫는 병은 아니고 몸속에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셈인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면역력이 약해지면 발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치료를 통해 가라앉힐 수 있다.
달이는 그 후로 사흘 정도는 눈을 계속 불편한 듯 감고 있었지만 5일째 되는 날에는 눈물도 멈추고 눈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나아질 거라고 믿고 약을 먹이며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처음 진료대로 각막염이려니 하고 나아지길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다시 허피스 처방을 받아온 게 다행이었다.
나는 가끔 남편이 유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양이들의 이상 증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편이다.
그 탓에 쓸 필요 없는 병원비를 쓰기도 하고, 놀라서 병원에 갔지만 허무할 정도로 별일이 아닐 때도 있다.
하지만 둔감한 것보다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각막염이든 허피스든 이름을 들어본 질병일 때, 그리고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라는 걸 확인해야만 겨우 안심이 된다.
묵직한 달이가 든 이동장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이름도 처음 들어본 긴 암 치료를 겪었던 제이가 '고작 그 정도로 난리냥' 하는 태연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의 일상이 건재하다는 걸, 고양이들의 말간 시선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