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삼시세끼’에서 쿵이, 몽이를 공개하며 연예계의 대표적인 애묘인으로 자리 잡았던 윤균상이 얼마 전, SNS를 통해 새로 입양한 킬트 종의 고양이를 공개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자신의 SNS에 “솜이는 킬트종”이라고 밝히며 “킬트는 사람의 욕심으로 억지로 만들어 낸 잘못된 종이다. 돌연변이랄까. 유전병도 많고 많이 아프고 정상적인 고양이들보다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아픈 애고 이미 세상에 나온 아기라 처음 보고 눈에 밟혀서 결국 제가 데리고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난에 “뭐가 문제인지 알았으니 이제 제발 그만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윤균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주된 입장은 ‘품종묘만 키운다’, ‘그냥 예뻐서 사온 것 아니냐’, ‘킬트 종은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유전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종’이라는 것이다.
물론 품종묘에 대한 지적은 기본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우리가 현재 품종묘라 지칭하는 고양이들은 자연 발생한 종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기준으로 예쁘다고 생각되는 고양이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연히 발견한 특징, 귀가 접혀 있다거나 다리가 유난히 짧다거나 한 돌연변이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이러한 특징을 유전시킬 수 있는 고양이를 선별해 교배하고, 그 특징을 강화시키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과 다른 유전적 특징을 지닌 고양이가 탄생하기도 하기에, 수없이 여러 차례의 교배를 거쳐 이상적인 ‘외모’의 고양이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즉 이런 경우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 근친교배를 하므로 유전병의 위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따라서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품종묘를 ‘만들어내거나’ 품종묘가 마치 다른 ‘섞인’ 종보다 우월한 순혈통인 것처럼 강조하는 행위는 애묘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예쁜’ 고양이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강아지, 고양이 공장의 실태가 알려지기도 하면서 펫숍에서 반려동물을 분양받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슬로건을 필두로 한 ‘입양 문화’가 권장되는 것은 분명히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품종묘의 탄생 비화에 대한 도덕적인 잣대를 윤균상이라는 개인에게 들이미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이전에도 일부 집사들은 “코숏을 키우지 않고 품종묘를 키운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상대방을 외모지상주의 한가운데서 동물학대에 일조하는 사람 취급하듯 비난하는 경우가 있어 왔다.
하지만 품종묘가 코숏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없듯, 코숏이 품종묘보다 우선시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품종묘를 분양받는 것을 권장할 수는 없으며 동물 학대에 가까운 교배와 분양 시스템은 분명히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기동물을 입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
네티즌들이 지적했듯 유전적 문제로 몸이 약한 킬트 종의 고양이 솜이는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대로 치료받아볼 기회도 없이 아까운 생명이 사그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균상이 밝힌 대로 ‘자꾸 눈에 밟히는’ 그 아이가 결국은 그의 묘연이었으리라.
결국 가족의 연을 맺고 나면 품종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는 나의 고양이가 될 뿐이다. 이미 세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인 그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연예인인 그가 품종묘를 입양했다는 사실이 품종묘에 대한 홍보로 이어져 학대에 가까운 잘못된 교배를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품종묘 ‘생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그 개인을 향하는 것은 지나치다.
윤균상은 이전에도 삼시세끼를 통해 반려묘 몽이가 개구호흡하는 것을 방조한다는 논란에 반박한 적이 있었다.
‘건강은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 고양이인데 어련하려고요’라는 그의 변명은 그때도 사실 불필요했다.
그가 동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지나친 우려는 결국 오지랖이었기에.
우리 개개인이 모든 가엾은 생명을 구원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하라고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자격도 실은 없다.
차라리 강아지, 고양이 공장이 사라지도록, 마트에서 돈을 내면 동물을 살 수 있는 간단한 분양 시스템이 변화하도록 한 마디라도 목소리를 보태주는 것이 오히려 동물들을 위한 일이 아닐까.
박은지 객원기자 sogon_abou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