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미국인 중에는 자신의 뒷마당을 자연과 소통하는 창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정원수에 새집을 걸어 놓고 모이를 주는 일이다. 그러면 다양한 새들이 찾아와 먹이를 먹으면서 쉬다가 간다. 그래서 월마트 같은 마트를 가면 야생 조류용 모이를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조류 대신 두발 달린 짐승과의 교감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음식을 담아둔 그릇을 마당 한 구석에 놓아둔다. 그러면 배고픈 여우나 코요테 같은 동물들이 와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물론 공짜 급식을 좋아하는 고양이들도 자주 온다. 동물을 좋아하는 미국 지인은 여우가 밤에 뒷마당에 와서 자신이 준 먹이를 먹고 한참 놀다 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유상급식을 하지 않아도 마당에서 와서 실컷 놀다 가는 동물들도 있다. 다람쥐와 카디널(cardinal)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다람쥐는 나무 위에 터를 잡고 살고 있으므로 손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뒷마당에서는 사람이 손님이고, 다람쥐가 실질적인 주인이다.
필자도 무상급식을 통해 야생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편이다. 작년 추석 즈음, 앞마당에 세워둔 차를 빼려고 했다. 그런데 차 근처에서 새 한 마리가 퍼드덕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 움직여서 무심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새는 카디널로 잠자리 한 마리를 부리로 물고 있다가 풀어 주었다가 다시 쪼아대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잠자리를 물고 날아갔다. 시간은 약간 지체되었지만 새가 곤충을 잡아먹는 것을 본 몇 안 되는 장면이었다.
잠자리를 부리로 문 카디널이 하늘로 날기 직전이다. 2017년 9월 촬영 |
필자의 눈을 행복하게 한 야생조류 카디널은 종교, 색깔, 동물 이름으로 활용되는 단어다. 그런데 그 뜻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카디널의 가장 중요한 뜻은 카톨릭에서 추기경을 일컫는 것이다. 카톨릭의 큰 어른인 추기경은 교황이 서거하거나 사임하면, 시스티나성당에서 열리는 콘클라베(Conclave)에 참석해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일을 한다.
추기경들은 순교자들의 거룩한 피를 뜻하는 짙은 붉은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 그래서인지 카디널이라는 단어는 짙은 붉은색(deep red)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카디널은 야생 조류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말로는 홍관조다. 화려한 외모에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가진 카디널의 깃털은 강렬한 붉은 색이다. 새의 이름이 왜 카디널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카디널은 새의 이름보다 야구단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미주리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세인트 루이스를 연고지로 한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을 11번이나 할 정도인 명문구단으로 뉴욕 양키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 전광판에서는 경기 중요 장면이나 덕 아웃의 표정을 수시로 비춰준다. 2017년 9월 촬영 |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는 어떤 경우에도 가을만 되면 부활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고 하여 가을 좀비, 좀비 야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야구팬들은 이 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참고로 한국의 대표적인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 선수가 이 팀에서 맹활약하여 한 때 미주 한인들의 많은 응원을 받기도 했다.
만약 미국 중부에서 "Do you like Cardinals?"이라고 누가 물어 보면 이는 새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카디널스라는 야구팀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다.
필자의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셔츠, 만약 이런 옷을 입고 여행을 하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물론 질문까지 여럿 받을 수 있다. 2018년 9월 촬영 |
답변자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여 자신과 같은 동료 의식을 가지기를 희망하는 질문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Yes, I do."라고 말하는 게 좋다. 물론 그 후 분위기는 매우 좋아진다. 세상을 살다보면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