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지혜로운 삶의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한 종족이
인디언이다. 사실 인디언은 잘못된 표현이고,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의 원주
민’, 다시 말해 ‘미국 원주민’이 바른 말이다. 그럼에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자신이 찾았던
인도로 알고, 그들을 인도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인디오’로 부른데서 인디언이란 말이 유래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인디언으로 시작했지만 이번 주제는 인디언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진 <체로키 인디언>의 우화 한토막이다. 한 때 SNS 통해서도 퍼졌던 내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두 마리의 늑대를 키우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전쟁과 불행을 몰고 오는 늑대
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늑대다. 그런데 이 두 마리는 늘 싸우고 있다”.
이 대목에서 퀴즈. 과연, 두 마리 중 어느 쪽의 늑대가 승자가 될 것인가.
정답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어느 누가 두 마리의 늑대를 키우든, 그 사람이 관심을 갖고
밥도 많이 주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그 밥의 내용물이 애정이든, 미움이든 많이 주는 쪽이
승자가 된다는 얘기다. 답변은 아주 상식적이지만, 곱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 되묻게 된다. 과
연 우리는 두 마리 중 어느 쪽의 늑대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과 어린이집 일부 보육
교사의 폭행사건은 충격을 주고 있다. 연초에 있었던 어느 인질범의 엽기적 살인행위도 ‘세상
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하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그들이 사랑과 행복이 담긴 밥 보
다는 미움과 불행으로 가득한 밥을 더 먹었던 탓인지, 순간의 일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안타깝고 탄식이 절로 나오는 사건들이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사람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동물이 소개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버림받고 고통 받는 동물들이 나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곤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동물만도 못한 사람
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줘야 할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하늘 한 번 쳐다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