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5년 전, 강원도 화천의 어느 펜션(pension)에 간 적이 있다. 그 펜션은 ‘산은 선명하고 물은 맑다’라는 뜻을 가진 산자수명(山紫水明)에 딱 어울리는 곳에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풀고 펜션 주변을 산책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느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무렵, 난데없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무엇인가를 빠르게 추격하는 개의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개에게 쫓긴 동물은 길고양이었다. 개가 턱 밑까지 추격해오자 길고양이는 다급한 마음에 십여 미터는 족히 될 정도로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개는 고양이와는 달리 높은 나무를 오를 재주가 없다. 답답한 개는 컹컹 몇 번 짖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개가 간 후 고양이는 나무에서 내려와서 재빠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예상했겠지만 그 개는 펜션 주인이 키우는 개였다.
개를 피해 나무 위로 피한 고양이. 2014년 어느 가을 화천에서 촬영. |
개는 무리를 이루면서 사는 사회적인 동물인 늑대의 후손이면서, 가까운 친척이다. 그래서 개는 무리에서 힘을 얻는 동력을 구한다. 개의 무리는 우리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사람 가족들이다.
개는 주인이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보고 있고, 위급할 때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보다 더 크고 무서운 존재여도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낸다. 그런 습성을 가진 개에게 자기보다 체구가 작은 길고양이는 하찮은 사냥감 정도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의 곁에 주인이 없었다면 애당초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체구가 작다고 해도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도 그런 사실을 잘 안다.
얼마 후 더 황당한 사건도 목격하였다. 아파트 안에서 산책을 하다가 말티즈가 자기보다 더 큰 고양이를 쫓아가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하던 개는 목줄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말티즈는 손쉽게 고양이의 뒤를 추격할 수 있었다.
말티즈는 소형견이다. 경비견이나 사냥견의 용도로 개량된 개도 결코 아니다. 말티즈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오로지 귀여움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 개다.
육안으로 보기에 말티즈는 길고양이의 상대가 되지 않아 보였다. 만약 길고양이가 도망치지 않고 말티즈에게 제대로 덤벼들면 말티즈는 1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말티즈는 자신의 뒤를 봐주는 주인이 있다는 것을 과신한 것 같았다. 말티즈가 다칠 것 같아 보였던 주인은 죽을힘을 다해 달리면서 개 이름을 불러댔다. 이번에도 개를 피하기 위한 고양이의 피난처는 높은 나무 위였다.
말티즈를 피해 나무 위로 달아난 길고양이. 2014년 어느 가을 촬영. |
주인 덕분에 자신의 능력치보다 용감해졌던 말티즈는 나무 위에 달아난 고양이를 짖어댔다. 하지만 뒤를 따라온 주인에게 붙잡히고 머리까지 한 대 쥐어 박히고 말았다.
“개는 나이가 들어도 영원히 아이”라는 말이 있다. 개는 평생을 주인에게 응석을 부리면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고양이의 삶은 다르다. 어미의 짧은 보살핌이 끝나면 이들은 험난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호랑이나 표범 같은 천적은 대한민국에 없지만 세상에는 자신을 노리는 존재가 많다. 특히 주인이 있는 개들이 고양이에게는 무서운 존재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