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서로 앙심을 품고 미워하는 사이를 앙숙(怏宿)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이런 앙숙 관계를 동물을 이용하여 비유하곤 했다. 좋지 않은 사이를 표현할 때 등장하는 동물은 개, 고양이, 원숭이다. 그 중에서 개와 원숭이를 조합하면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고, 개와 고양이를 조합하면 견묘지간(犬猫之間)이 된다. 여하튼 개는 두 조합에 모두 들어간다.
필자는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개, 고양이, 닭 같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물은 물론 마당에 연못을 파서 잉어, 붕어, 민물새우,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들을 키워보기도 했다. 또한 대형수족관을 주문제작하여 갖은 종류의 열대어도 키워보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도 원숭이는 익숙하지 않은 동물이다. 원숭이와 관련된 경험은 일본의 깊은 산에서 과자를 먹다가 원숭이에게 봉지까지 빼앗긴 게 전부다. 그래서 원숭이와 개의 관계는 알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그들의 관계를 글로 풀어내기는 내공이 부족하다는 점을 솔직히 실토한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를 같이 오랜 기간에 걸쳐 키운 경험은 몇 번 있다. 그래서 견묘지간에 대해 설명은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견묘지간이라는 말은 개와 고양이라는 두 동물의 모든 관계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속담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모두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는 않다. 적어도 개인적 경험이 그렇다.
여태껏 경험한 개와 고양이의 조합은 두 가지였다. 첫 경험은 재패니즈 스피츠와 고양이의 조합이었고 그 다음은 진돗개와 철부지 고양이 조합이다. 전자는 고양이가 영리하고 믿음직한 반면 개는 철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후자는 반대였다. 고양이는 철이 없고 겁이 많았지만, 진돗개는 외모에서 풍기는 의젓함과 내면의 강력한 포스가 대단했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상대적으로 철이 더 많이 든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돌봐주고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지나친 의인화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첫 조합의 주인공은 고양이였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은 늘 고양이가 쥐었다. 장난꾸러기 개는 주인이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사고뭉치 같이 행동했다. 반면 고양이는 고양이의 탈을 쓴 점잖은 사람과도 같이 행동했다.
고양이 나비는 주인의 호불호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피츠는 계속 고양이에게 심한 장난을 걸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무심하게 넘어가거나 적절한 선에서 놀아주었다. 고양이의 자제 덕분에 집안의 평화는 계속 이어졌다. 고양이 덕분이었다.
두 번째 조합의 주도권은 고양이가 아닌 진돗개가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 옹강이는 새끼 때부터 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늘 응석받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옹강이도 어른이 되면서부터 밖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당에서 진돗개와 노는 것을 좋아했다.
옹강이는 싸움을 잘하지 못했다. 그런 옹강이는 자기 집 마당에서 놀아도 동네 길고양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옹강이가 마당에 나오면 동네 길고양이들은 귀신 같이 알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옹강이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옹강이는 궁지에 몰리면 위급한 소리를 내서 진돗개를 불렀다. 용맹한 진돗개는 자신의 동료인 옹강이의 울음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개가 뛰어들면 길고양이들은 혼비백산했다.
아무리 싸움에 능한 길고양이라도 진돗개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개가 고양이를 구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진돗개는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옹강이에게는 늘 관대했다. 밥은 물론 물도 나눠 먹었다. 심지어 식사를 같이해도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마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 같았다. 이들에게 견묘지간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말이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