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일요일이던 지난 17일 아침 경기도 하남과 인접한 서울 송파 끝자락. 화원과 주말농장, 채소 가공공장 등 변두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 이 곳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곳곳에 목줄에 묶여 있는 개들에게 다가간 그. 능숙하게 줄을 풀고선 가져온 목줄을 채워준다.
개들도 이 사람을 아는 지 겁을 내기는 커녕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녀석은 껑충껑충 뛰기까지 한다.
묶여 살기는 하지만 엄연히 주인이 따로 있을 개들. 이 개들과 이 사람은 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
목줄이 다 채워진 개들을 하나하나씩 앞장 세우고서는 매여 있던 곳을 떠나는 이 사람.
멀어도 개집 반경 2미터 정도까지만 움직일 수 있었던 개들은 동네 곳곳의 냄새를 맡고, 응가도 누고, 소변도 이곳저곳에 뿌리기 바쁘다. 봄이 되어 살짝 올라오기 시작한 풀들의 냄새를 맡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매여 있던 사실을 잊는다면 전형적인 강아지 산책길이었다.
'시골개 1미터의 삶' 캠페인을 벌여온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활동가였다. 개들은 산책 나가기만 기다리면서 꼬박 1주일을 기다려온 녀석들이었다.
이곳의 개들은 거의 대부분 시간을 집에 묶인 채 살아왔다. 말이 집이지 간신히 바람 만 피할 수 있는 곳들이 흔했다.
주인이 이곳에 사는 것이 아니고 볼일이 있을 때만 오다보니 사료를 먹는 것은 고사하고 물조차도 어떨 때는 며칠에 한 번 먹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몇년 전까지는 여름이 지나면 사라지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러다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이 나서면서 이제는 1주일에 한 번이지만 산책도 나갈 수 있게 됐다.
"보통은 여러 자원봉사자 분들과 함께 하지만 이날은 시간이 여의치 않아 활동가 혼자서 현장을 찾게 됐어요. 1주일을 기다린 녀석들을 생각하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죠."
이형주 어웨어 대표의 설명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활동가는 이 대표였다. 이들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주말 아침만 되면 개들이 들뜬다니 주말 일정은 이곳에 고정된 지 오래다.
2년 전 이곳 곳곳에 묶여 평생을 살아가는 개들을 본 뒤 주인들에게 다가갔을 때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왜 남의 개한테 간섭하려 드느냐' '내 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상관말라' 등등. 외부인에 갖는 어쩌면 당연한, 그리고 예상했던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평범한 반려견들처럼 주기적으로 산책을 시켜주겠다는 주인도 있다. 그저 비루한 존재로만 보였던 개들에게 정이 붙은 것이었다. 개들 역시 사납고, 힘없는 모습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생기가 생겼다.
이 대표는 "추웠던 겨울을 탈없이 잘 견뎌준 개들이 너무 고맙다"며 "묶여있는 개들 옆을 지나게 된다면 물그릇이라도 채워주는 방법으로 관심을 표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좁은 공간에 묶여서 사는 것은 개의 본성과 맞지 않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묶여서 사는 1미터 개들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