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용인에서 발생한 말티즈 생매장 사건은 애견인뿐 아니라 국민을 공분케 하고 있다. 무더위와 겹쳐 잠 못 들게 하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러 분들이 애쓰신 덕에 말티즈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말티즈를 생매장시키려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잔인함이 도를 넘어서 극한으로 치달은 그 누군가의 행동은 인간의 짓이 아니라 믿고 싶다.
이번 사건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결코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좋으면(like) 취하고, 싫어지면(dislike) 내다버려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는 용서받기도, 용서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인 이름 모를 말티즈는 어찌 보면 무간지옥을 떠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온 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숨 쉬는 생명체를 포대에 담아 땅에 묻어버린 사람이 평소엔들 제대로 돌보기나 했을까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동물을 유기하는 일이 너무나 빈번하다. 지난해 8만 건 이상이 접수됐다. 세상이 동물의 유기행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스스로에 대해 성찰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과연 생매장 건과 동물의 유기 행위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양심과 생명을 버리고, 누군가에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점에선 매일반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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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펫 픽사베이 |
분명 반려견이 당신을, 우리를 찾아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사랑해서든, 아니면 뭔가 부족한 우리를 채워주고, 도움을 주기위해서든 말이다. 바람의 흐름도 다 이유가 있다는데, 하물며 생명이 찾아 온 것은 그 것이 누구의 선택이었든 우리를, 당신을 위해서 찾아왔을 것이다. 괴롭히려고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살라고 온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를 옮겨본다. <사람>을 <반려견>으로 바꾸어 읽어봐도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의미에서 권해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