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어떤 학자들은 고양이를 호랑이의 내면(內面)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 멋있게 느껴지는 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묘가(愛猫家)의 입장이라면 듣기 좋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견해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고양이의 내면에는 호랑이보다 표범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곳을 좋아한다. 그 곳은 고양이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높은 나무 위에 있는 고양이를 귀찮게 할 존재는 세상에 없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고양이의 입장에서 높은 곳은 배타적인 공간인 소도(蘇塗)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높은 나무 위는 주변이 탁 트여서 세상의 일들을 조망하기 좋다. 이는 집고양이들이 하루 종일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운이 좋으면 나무 위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땅위에서 장난치는 작은 새나 설치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작은 동물들은 고양이에게 손쉬운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
덩치 큰 개를 피해 높은 나무 위에 오른 고양이. 2014년 강원도의 한 펜션 |
표범은 사자나 하이에나(Hyena) 같은 포식자들이 올라가기 어려운 높이의 나무에 오르는 것을 즐긴다. 심지어 표범은 체중의 두 배나 되는 큰 먹이를 물고 나무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런 힘든 일을 하는 이유는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높은 곳은 표범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지상이 아닌 높은 나무 위에 있는 표범은 다른 포식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곳의 지배자는 표범이기 때문이다.
원숭이 같은 수생동물(樹生動物)들은 표범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원숭이, 새 같은 동물들은 표범의 주요한 먹잇감이기도 하다. 덩치 큰 침팬지도 표범에게 종종 사냥되기도 한다. 표범도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나무 있다가 임팔라 같은 사냥감들이 접근하면 마치 다이빙 선수처럼 이들을 급습한다. 표범에게 높은 곳은 자유와 휴식 그리고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표범은 먹이를 나무 위로 옮기는 습관이 있다. 2018년 3월 스미소니언박물관 |
고양이는 매복에 능한 동물이다. 주변 엄폐물(掩蔽物)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상대방을 기습 공격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고양이에게도 여전히 이런 습성이 남아있다. 한눈을 파는 주인을 상대로 집고양이는 종종 이런 공격을 가한다. 주인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기 일쑤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고양이를 찾기 어렵다. 2013년 과천의 야산 |
표범도 고양이와 유사하다. 표범은 하루 종일 안전한 나무 위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가 나무 아래로 사냥감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기습공격을 가한다. 상대는 공격당하기 직전까지 표범의 존재를 전혀 인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범은 사자나 리카온(Lycaon)처럼 시야가 탁 트인 개활지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사냥감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표범이라는 포식자는 사냥꾼이 아닌 암살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