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 항해의 동반자 고양이
[노트펫] 인류는 말이나 낙타 같은 덩치가 크고 지구력이 강한 동물들의 도움으로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었다. 만약 그런 동물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원거리 여행은 불가능했을 수 있다. 두 발로 걷는 인류가 오로지 자신의 발로 무거운 짐을 메고 가는 여행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나 낙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동물이 인류를 더 먼 원거리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한 동물은 한없이 연약하고 귀엽게 보이는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동물이 아니다. 물론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능력도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다른 어떤 동물도 하기 어려운 일을 지난 수천 년 동안 묵묵히 한 것이다. 지금도 고양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고양이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본능에 따라 쥐를 잡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배는 육지에 비해 매우 좁고 비좁다. 그리고 배에는 먹을 것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배는 통로가 좁아서 사람들이 작은 체구의 쥐를 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쥐의 입장에서 배는 천국이나 마찬가지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배는 출항하기 전에 항해에 대비해 충분한 식량을 비축한다. 따라서 항구에 정박한 배는 쥐의 좋은 공략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다. 쥐는 냄새에 이끌려 밧줄 등을 타고 몰래 배에 잠입한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창고를 턴다. 하지만 쥐가 배에 올라타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순간 배는 바다로 출항하게 된다.
미국 뉴욕항에 정박 중인 범선. 2018년 3월 촬영 |
이렇게 배에 올라탄 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민폐를 배에 끼친다. 식량을 축내는 일은 쥐가 일으키는 수많은 피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다.
쥐는 배의 전선을 갉아 정전의 원인을 제공한다. 이는 항해에 심각한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또한 끊어질 일이 없는 튼튼한 밧줄을 훼손시킨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쥐는 쥐벼룩 같은 피부병 같은 위생 문제도 일으키기도 한다. 더 심한 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배에 탄 쥐는 선원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되게 된다. 쥐는 작고 날래다. 그래서 선원들이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배에 고양이를 몇 마리 태워 가는 것이다. 이런 고양이들을 쉽즈 캣(ship's cat), 우리말로는 배에 있는 고양이라는 뜻을 가진 함재묘(艦在猫)라고 한다.
선박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은 항해에 지친 선원들의 정서적 안정에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귀엽고 예쁜 고양이의 존재는 선원들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함재묘를 쓰다듬는 윈스턴 처칠. 출처: 임패리얼전쟁박물관 |
함재묘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1,200년 전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도 배에 고양이를 태우고 다녔다. 국내에서 인기 높은 고양이 노르웨이 숲고양이(Norwegian Forest cat)도 바이킹의 함재묘 출신으로 추정된다.
함재묘의 전성시대는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였다. 수개월에 걸쳐 대서양을 횡단하던 당시 범선들은 고양이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항해와 식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화된 선박에서도 함재묘가 존재한다. 쥐의 활동을 억제하고 선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다. 아마 함재묘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