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고양이는 작은 머리와 좁은 어깨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사람 같으면 없던 폐소공포증(Claustrophobia, 閉所恐怖症)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좁은 공간이지만, 고양이는 그런 공간을 유독 좋아한다.
고양이는 마치 비좁은 공간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외로운 구도자(求道者)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이런 고양이의 심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좁은 공간을 즐기는 고양이의 습관은 기이한 행동이 아니라 생존욕구가 만들어 낸 본능이다.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숨어있다.
비좁은 공간은 고양이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휴식을 취하게 해주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게 만들어 준다. 심지어 덩치 큰 천적의 위협을 피해 자신의 소중한 새끼까지 무사히 키울 수 있도록 해준다.
믿기 어렵지만 많은 길고양이들은 그런 좁은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진을 보면 고양이의 그런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사진 속 고양이는 맨홀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십여 분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신기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자, 동네 주민은 그 구멍 밑에서 고양이가 자기 새끼를 키우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진 속 고양이는 맨홀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동네 주민은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에게 젖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2018년 미주리주 |
고양이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사자나 늑대처럼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 아닌 고양이는 자신과 새끼들의 안전을 모두 자신이 챙겨야 한다. 고양이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덩치 큰 동물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서 머무는 것이다. 좁은 공간이 고양이가 찾는 바로 이상적인 곳이다.
사바나 초원의 중간급 포식자 표범도 고양이와 비슷한 처지다. 고양이처럼 단독생활을 하는 표범은 안전을 위해 편안한 지상의 삶 대신 원숭이나 다람쥐 같은 수생동물(樹生動物)의 삶을 선택하였다. 표범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들은 표범보다 덩치가 크고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 하이에나 같은 포식자들이다.
표범은 자신이 사냥한 먹잇감을 이렇게 높은 나무 위로 올려서 식사한다. 2018년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 |
하지만 표범이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면 그런 동물들은 결코 표범의 안전을 위협하지 못한다. 그런 대형 맹수들은 높은 나무 위를 표범처럼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표범보다 훨씬 작은 고양이는 당연히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니다. 그래서 입구가 비좁은 공간에서 살면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좁은 곳을 좋아하는 성향은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집고양이에게서도 여전히 발견된다. 집고양이들은 먼지투성이 공간인 장롱 같은 가구의 좁은 틈을 좋아한다. 몇 시간씩 그런 곳에 숨어 있다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양이의 행동을 꾸짖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주인과 친한 고양이라도 자신만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고양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