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얼마 전 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제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우리집 제사상에는 항상 생선구이가 오른다. 제사상에는 과일이나 생선이나 항상 홀수로 올린다. 그러므로 이번 제사상에 오른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부세의 수는 3마리였다.
서민들에게 부세는 참 고마운 생선이다. 생김새는 귀하고 비싼 참조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가격은 저렴하고 더구나 참조기에 비해 체구가 커서 먹을 것도 많다. 그러니 서민들이 조기 대신 격식 있는 자리에 종종 사용한다.
부세 구이를 먹다가 어릴 때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생각났다. 고양이 나비가 생선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침상을 차릴 때면 나비 몫까지 생선을 꼭 챙기셨다.
나비를 키울 때만 하여도 반려동물에 대한 사료를 제작하는 곳도, 판매하는 곳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 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직접 동물들의 밥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 때 집에는 개도 몇 마리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이면 가족들은 이들 동물들의 밥도 같이 만드셨다.
나비는 예쁘고 착한 고양이었다. 하지만 입맛은 매우 까다로웠다. 생선은 분명 좋아했지만, 여러 가지로 가리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날생선은 먹지 않았다. 반드시 완전히 요리된 생선만 먹었다. 생선 요리 중에서도 국물 안에 들어간 생선은 먹지 않았다. 매운탕에 들어가 있는 생선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프라이팬에 먹기 좋게 잘 구워준 생선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만드신 납세미 구이, 2012년 촬영 |
어릴 적 어머니는 시아버지인 할아버지를 위해 매일 아침 생선구이를 만드셨다. 할아버지가 워낙 생선구이를 좋아하셔서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을 위해 매일 아침 수고하셨던 어머니의 노고에 고마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생선구이를 그 어떤 음식보다 좋아한다. 아마 어릴 때 많이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생선구이 중에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고등어구이를 좋아하는데, 할아버지는 기름기 많은 등푸른생선보다는 부세, 조기, 납세미(가자미의 부산 사투리) 같은 흰 살 생선을 좋아하셨다.
가족 구성원 간의 입맛이 갈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식탁의 주도권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쥐고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7:3의 비율로 흰 살 생선이 등푸른생선보다 더 많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즐겨먹는 고등어구이 |
그런데 부엌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했던 나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비도 집안의 어른인 할아버지와 비슷한 입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비는 고등어로 아침밥을 만들어주면 반쯤 먹다가 말았다. 하지만 부세나 조기 같은 것을 주면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제사를 지낸 후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고양이 나비 덕분에 40여 년 전의 추억을 즐겁게 나눌 수 있었다. 이는 제사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랜 만에 나비는 과거 주인들의 대화 자리에 강제소환됐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