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사람과 같이 살기 전, 야생에 살던 고양이들의 삶은 온갖 위험이 주변에 존재했다. 그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먹이 피라미드(food pyramid)에서 중간급 위치에 속한 동물인 고양이들의 선조는 때로는 사냥꾼으로 활약했지만, 때로는 상위 계층에 속한 포식자들의 먹잇감 신세가 되기도 했다.
특히 고양이보다 덩치가 큰 표범 같은 빅 캣(big cat)들의 존재는 야생 고양이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위험이었다. 따라서 고양이들의 선조들은 이러한 포식자들의 위험으로부터 확실히 도망치는 법을 터득하는 게 지속적인 삶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고대 병법에 삼십육계(三十六計)라는 게 있다. 이 병법은 손자병법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도 삼십육계주위상책(三十六計走爲上策)이라는 것이 있다.
삼십육계라는 병법에서도 36번째 조항인 이 문장을 의역하면 ‘당장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무리하게 싸우지 말고 도망치는 것이 좋은 방법(上策)’이라는 뜻이다.
잘못 이해하면 위험한 싸움이나 도전은 피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이 구절을 이해하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내는 겁쟁이들의 변명에 불과한 미사여구(美辭麗句)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술은 결코 비겁함을 합리화시키는 게 아니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대신 전투력 손실이 없이 일찍 도망쳐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술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고양이 같은 중간급 포식자라면 삽십육계주위상책을 명심해야 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금언(金言)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몇 년 전 살던 아파트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개들을 피해 나무 위로 오른 고양이. 이 고양이는 약 10여 분 후 개가 주인과 함께 사라지자 나무에서 내려왔다. |
체구가 작은 고양이들이 택한 피난처는 나무 위다. 나무 위는 자신보다 덩치 큰 포식동물들이 오르기 어렵다. 표범은 서발, 스라소니, 삵 같은 야생고양이들을 곧잘 해친다.
그런 표범은 나무를 타는데도 선천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먹잇감을 잡으면 나무 위에 걸어두고 며칠 동안 자신만의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표범이 오르는 나무의 높이에는 한계가 있다. 표범은 체중이 꽤 나가기 때문에 키 큰 나무의 제일 높은 부분까지는 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체중이 가벼워서 가는 나뭇가지 위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아무리 나무를 잘 타는 표범이라도 고양이가 나무 꼭대기가지 오르면 잡기 어렵다.
나무 위에 사냥해둔 먹잇감을 걸어놓은 아프리카 표범, 2018년 6월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부설 자연사박물관 |
나무 위는 고양이에게 이런 은신처, 피난처의 역할 이외에도 조망권까지 보장해준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살펴보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물론 지상을 지나는 작은 먹잇감의 움직임도 관찰할 수도 있다. 나무 위에 있는 고양이는 공중에서 먹잇감의 움직임을 살피는 매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