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산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반나절, 정확히 2시간 정도 짜여진 빅토리아 폭포 관광입니다. 거기서 문제는 돈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세 명이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중 두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이 없어졌습니다. 한 사람은 500유로, 한 사람은 1,500달러였습니다. 저도 그리 되었을 것인데 돈을 다 써버리고 남은 돈은 주머니 속 지갑에 넣고다녀 화를 피한듯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저는 더 크게 당했습니다. 카드가 도용되어 24건이나 미국의 음반 상점에서 결제가 되었으니까요. 아침부터 분실 시점과 장소를 되짚어 보느라 분주했습니다.
다르에살람의 호텔에서는 룸서비스를 이유로 직원들이 수시로 방에 드나들었습니다. 왜 들어오냐고 하면 사과만하고 나가버리는 일이 하루에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방에 들어와 가방을 뒤지지 않았을까요? 많이도 아니고 하루에 100달러씩 그렇게 가져가지 않았을까요? 일행 중 한 사람은 잠비아에서 짐바브웨로 이동 중 점심을 먹는 동안 차량에 배낭을 두었습니다. 운전사가 주차를 다시 한다고 차에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운전사가 배낭을 뒤지지 않았을까요?
우연인지 몰라도 우리가 묵은 다르에살람의 호텔방은 금고가 고장이었고 운전사는 다시 주차한다고 두 번이나 차에 다녀왔습니다. 상상이 지나치다 보니 금고가 고장 난 방을 일부러 주고 그 방을 대상으로 삼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운전사는 그 다음날부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떠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운전사가 1,000달러를 빼갔다면 그는 쉽게 맛 본 달콤함 때문에 언젠가 감옥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 돈이 어려운 살림에 쓰이고 꼭 필요해서 훔친 레미제라블의 은촛대 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500달러 더 얹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의 소란을 뒤로하고 빅토리아 폭포로 향합니다. 500만 년 전에 땅이 융기하며 생겨난 폭포라는 안내가 그림과 함께 폭포의 영역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빅토리아 폭포는 절편같이 잘린 두 개의 고원평지 사이로 하늘에서 쏟아 붓듯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대표적입니다. 이 계곡을 바토카 계곡이라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여러 줄기의 강이 깊은 계곡으로 낙하하여 물줄기를 이루는 광경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3월 말은 앙고라 고원 등 강의 시원지점이 우기였습니다. 때문에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수량이 너무 많아 강과 부딪치며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하늘로 치고 올라간 물방울이 비같이 퍼부어 사진 한 장 찍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안내판에는 백내장의 섬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뿌옇게 앞을 가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정말로 백내장 환자가 된 기분입니다.
책에서는 빅토리아 폭포를 폭포의 모양에 따라 악마의 폭포, 중심 폭포, 말발굽 폭포, 무지개 폭포, 안락의자 폭포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폭포를 소개합니다. 1번부터 16번 전망대를 일주했지만 아무 폭포도 보여주지 않는 괴력에 흔한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합니다. 16번 전망대에 닿으니 빅토리아 폭포 관광 증기기관차가 서 있고 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광고였습니다. 빅토리아 폭포에 왔으니 이런 걸 해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폭포가 안보이는 데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희뿌연 물보라 속에서 그리운 님을 그리듯 폭포의 가장자리만이라도 보려고 안달하다 말텐데요. 16번 전망대를 끝으로 발길을 돌려나옵니다. 국립공원을 나오며 설명문을 보니 가장 수량이 적을 때가 9,10,11,12월이고 가장 많을 때가, 3,4,5,6월이랍니다. 가장 물이 풍성할 때 제가 빅토리아 폭포를 찾은 것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옛날부터 빅토리아 폭포를 ‘모시 오아투니아’, 즉 천둥치는 연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본 멋진 빅토리아 폭포를 보지 못했지만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본 듯 합니다.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잠베지 강 상류, 즉 빅토리아 폭포 위의 물줄기를 따라 가는 선셋 크루즈를 즐깁니다. 배에 오르니 술을 가지런하게 올려두었네요. 마음대로 먹어도 공짜랍니다. 배를 타는 재미도 좋고, 선셋의 분위기도 좋지만 저에겐 무엇보다 강 바람이 시원한 크루즈였습니다. 아마존 나이트 투어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카이먼이라는 아마존에 사는 작은 악어를 찾는 투어였습니다. 고요히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앉아있는 게 좋았습니다.
쓸쓸한 바람과 짙은 어둠, 별의 반짝임, 그 때 가이드는 모든 랜턴을 끄고 배에 누워 하늘을 보라고 했었지요.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싶은 아늑한 자리였습니다. 어제의 선셋 크루즈는 어땠을까요? 저는 바람이 가져다 준 냄새와 소리가 좋았습니다. 물론 진토닉을 더블로 네 잔을 마셨으니 커다란 진을 저 혼자 반 병이나 비운 후 이긴 합니다. 바람과 물결의 응조, 마주 대하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틀어놓은 넬라 판타지아 노래가 가슴을 촉촉히 적셨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목에 환전을 했습니다. 참고로 짐바브웨는 달러를 자국 통화처럼 씁니다. 빅토리아 폭포 지역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계산을 미국 달러로 합니다. 그러니 미국이 그렇게 돈을 찍어내도 아직 끄떡없는 거겠지요. 달러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아프리카에도 있으니 말입니다.그런 면에서 잠비아는 외환관리가 아주 잘되는 나라였습니다. 중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달러를 내니 환전상에 가서 바꾸어다 영수증과 함께 줍니다. 그런데 그 금액이 공항에서 환전했을 때보다 더 낮습니다. 그건 블랙 마켓이 없다는 것이지요.
잠비아나 말라위의 화폐를 콰차라고 하는 데, 새벽이라는 뜻입니다.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슬로건으로 콰차를 외쳤다고 합니다. 새벽은 온다는 믿음이었겠지요. 그래서 그들의 구호가 콰차인데 화폐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남자가 떠오릅니다. 새벽 쓰린 가슴으로 찬 소주를 붓는다. 노동의 새벽을 지은 박노해 시인입니다. 그도 새벽을 애타게 기다린 남자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니 그 분도 세계 일주를 떠난다더군요. 새벽을 기다리는 시대는 언제나 영원합니다만 이젠 쓴 소주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지요. 와인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오량액도 있으니까요. 기다리는 마음만이 중요한거지요.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