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는 독일 선교사들이 내륙에 세운 작은 선교 거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의 대상이 원주민이었을텐데요. 무슨 이유에선지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상인들은 더 악랄해지고 본국으로부터 이주민이 늘어납니다. 이로인해 원주민들은 가진걸 빼앗겨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아프리카적인 현상은 아니구요. 흔히 제국주의로 불리던 시대의 현상이라 남아메리카는 물론 심지어 구대륙의 거인 중국도 겪은 일입니다. 그런데 유난히 나미비아는 심했습니다. 아프리카내에서도 심하다 못해 너무 심했습니다.
영국은 그나마 신사인가요? 아니면 먼저 선점해서 여유가 있나요? 영국의 식민정책은 세 가지를 중시했습니다. 식민지는 자급자족할 것, 영국에 원료를 공급할 것, 영국제품을 살 것, 이 원칙이 지켜지면 그리 못되게 굴지는 않았답니다. 어쩌면 그 정도로 빼앗아야 오래도록 빼앗아갈 수 있겠죠. 어떤 전투적인 개미 집단은 싸움이 약한 흰 개미 집단을 공격할 때 30%만 남겨놓고 70%는 죽여 식량으로 가져간답니다. 흰 개미는 다시 증식할 테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다시 쳐 들어와 필요한 만큼한 잡아가 식량으로 삼으면 되니 아주 싹쓸이하는 것 보다 고기 창고로는 최고가 아닙니까?
그런데 나미비아에서 보인 독일은 30%의 여유도 없었는지 싹쓸이하려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헤레로족과 나마족이 독일지배에 저항하자 인종말살정책을 취합니다. 그 결과 75%의 헤레로족과 나마족이 살해당합니다. 한 종족의 75%가 아주 짧은 시간에 죽었다면 이는 의도적인 학살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아이와 노인 여자의 구성비를 볼 때, 그리고 위험을 피해 사전에 도피한 사람들을 고려해볼 때 성인남자는 모두 죽어야만 했을 테구요. 여자와 아이도 수 없이 죽어야만 그 분포를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진한 헤레로족은 독일을 공격하기 전 비밀리에 가진 부족회합에서 여자와 어린이, 선교사는 죽이지 말자는 결의를 했답니다.
역사적 진실을 뒤로하고 공항을 나와 빈트후크 시내로 달려가는 내내 유럽의 작은 도시를 방문한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프리카가 검다는 편견을 깨듯 사람도 다양합니다. 아프리카는 흑인만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아프리카에 흔한 인도인과 중국인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아프리카에서도 흑인과 백인만 사는 특별구인가 봅니다.
빈트후크 시내는 대로에도 마땅한 건물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단층이거나 이삼층 건물이 넓게 자리 잡고 있구요. 중심대로를 벗어나면 세련되고 현대적인 집들이 듬성듬성 여유롭게 자리합니다. 집 안에 수영장이 있고 넓은 잔디밭을 가졌다는 집들이 2억원 정도밖에 안된다니 우리네 빽빽한 삶과 달리 여유로워 보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인구는 200만밖에 안되지만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는 땅을 가졌으니 나미비아에서 땅투기는 모래밭에 다이아몬드 찾기가 아닐까요?
빈트후크에 도착한 첫 날은 33개의 운석이 전시 되어있는 카페거리를 찾아갔습니다. 세어보니 3개가 부족해 30개입니다. 누군가 훔쳐갔을까요? 운석은 다이아몬드의 몇 배라는 데요. 이번에 위치와 주변을 답사했으니 전문가를 모아 영화처럼 멋지게 해치워볼까하는 충동이 생깁니다. 운석은 우주공간으로부터 지표로 떨어진 암석입니다. 우주공간에는 행성에서 떨어져나온 유성체가 떠다니는데, 이 유성체는 지구대기로 진입하며 대기와의 마찰로 가열되어 지상 100km 상공에서 모두 타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중 일부가 지표면까지 도달하는 데, 이것이 운석입니다. 지구는 태양주위를 초속 30km로 돌고, 유성체는 초속 10~79km 속도로 날아온다고 하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입니다. 상상불가능의 엄청난 속도가 만들어내는 마찰로 인해 유성체는 대기권을 지나며 대부분 타버리고 지구까지 도달한 놈은 불순물이 없는 고순도의 철 성분만이 남습니다. 그래서 무지 무겁고 단단합니다. 한 마디로 발칙한 놈인게죠. 오늘 본 가베온 운석도 축구공만한 게 보통 200kg라고 합니다. 무거운 건 500kg까지 나간다고 하는군요.
나미비아는 운석의 나라인가요? 세계에서 운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남극인데,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큰 운석은 나미비아 호바지역에서 발견된 호바운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베온 운석은 나이가 45억년이나 된다고 하네요. 물론 탄소동위원소로 측정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45억년전에는 아프리카 땅도 없고 가베온 지역도 없으니 지구에 떨어졌어도 용암 속에서 이리저리 뒹굴었겠죠.
지구의 나이는 대략 60억년으로 보는데 초기의 가스와 먼지 상태로 오랜 시간을 지내다 아프리카 남부에 첫 암석이 떠오른 게 16억 년 전 쯤 됩니다. 그러다 표면이 굳어 암석층이 생기고 대지의 형세를 갖추게 된 게 5억 5천 5만년 전이고 그 때 처음으로 생겨난 게 아프리카 대지입니다. 그러니 아프리카를 대지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가베온 운석은 그렇게 이리저리 떠밀려다니다가 대지가 굳으며 대지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가베온 지역이지요. 하여튼 조형미 있게 오밀조밀 걸어둔 운석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보니 무심하기 짝이 없네요. 하나 가져가도 모를만큼 무관심하기만 합니다. 정말 팀짜서 다시 오고싶게 말입니다. ‘안녕 아프리카’에는 33개라고 적혀있는데 수 년 사이 3개를 누가 훔쳐갔는지 지금은 30개이구요. 운석이 사라진 자리를 설명하듯 빈 설치 받침대만 있습니다.
카페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한가로이 걷다 보니 캐나다의 캘거리나 유럽의 작은 도시를 걷는 기분입니다. 깨끗한 집과 상가, 세련된 사람들의 몸짓이나 복장, 여기가 아프리카? 이집트부터 지나온 이디오피아, 탄자니아, 짐바브웨, 심지어 잠비아나 보츠와나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나마 잠비아와 보츠와나가 좀 낫다고 하지만 나미비아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들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린 원동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사냥에 늦게 참여한 독일은 늦은 만큼 얻은 땅이 적었고 현지 지배정책을 혹독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혹자는 게르만족의 잔인성을 들어 대학살과 연관성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역사상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일방적으로 행한 인종학살로 데이비드 데이는 [정복의 법칙]에서 독일이 나미비아에서 저지른 헤레로족 인종학살, 또 2차 대전 중 행한 홀로코스트, 600만이나 살해한 인종청소였죠. 터키도 만만치 않습니다. 쿠르드족 학살과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아마 신생 터키의 조바심이라고 해도 지나칠 정도의 인종학살이었습니다. 그 외 미국의 체로키족 학살, 호주의 태즈매니아인 학살을 꼽았습니다. 학살은 조바심에서 생기지 않을까요? 아니면 포용력이 부족한 인성이 원인은 아닐까요? 학살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기 보다 진행되며 폭발력을 갖습니다. ‘그만 해야돼, 너무 지나쳤어.’ 그렇게 느끼기까지 조절력을 잃고 미친듯이 달려갑니다. 그건 폭력에 대한 태도와 본능 때문입니다. 게르만족이 학살과 유난히 관련이 깊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지적은 그런 면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베 사파리를 할 때 4명의 독일인과 어울렸습니다. 밝고 명랑한 두 명의 아가씨, 무뚝뚝하게 자기 할 일만 챙기는 청년, 인자한 듯 웃기만 하던 아줌마. 아주 괜찮은 조합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남에게 실례를 하지 않는 절도있고 예의 바른 행동을 했습니다. 저렇게 좋은 사람들 가슴에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을까요? 더 이상은 상상하기 싫습니다.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였지만 독일이 지배한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고작 37년에 불과합니다. 미국 대통령 윌슨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아프리카의 여러 식민 국가들은 꿈에 부풀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 패전국에만 해당되는 논리였습니다. 1차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식민지 나미비아에는 해당되지만 영국, 프랑스의 식민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도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여하튼 독일은 식민지를 전부 잃습니다. 나미비아는 독일대신 주인으로 들어온 남아공이 70년이나 신탁통치를 합니다. 다른 독일 식민지였던 르완다, 브룬디는 독립 전까지 벨기에가 신탁통치합니다. 그러고 보니 독일이 관계된 학살이 더 있습니다. 르완다의 인종청소와 브룬디의 인종학살사태입니다. 물론 독일이 통치하던 시대는 아니지만 독일이 과거 지배했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독일의 영향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래도 공항에 쓰여 있는 문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10대 성장 국가중 5개가 아프리카다.” 그 중 하나가 나미비아인건 분명합니다. 길을 가다 보면 하얀 얼굴의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여행객일까요? 아니랍니다. 동네주민이라네요. 흑백을 모두 포용한 훌륭함이 거둔 성장의 과실이 아닐까요?
넬슨 만델라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일방적인 독재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아프리카에 정착했고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이상 아프리카인인거죠. 그래서 흑백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포용함으로서 갈등을 넘어 화해의 길로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표현 말고 현실은 다른 얼굴을 갖지는 않을까요? 식당도 주인은 백인이고 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백인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흑인이고 뜨거운 태양아래 거리를 힘들게 걷는 사람들은 흑인입니다. 슈퍼에 가니 가판대의 점원은 흑인이고 소비자는 대부분이 백인이었습니다. 무슨 숨겨 논 꼼수가 있는 건 아닌가요?
나미비아는 1990년에야 독립했습니다. 독립 이전에 보아인으로 불리는 네덜란드계 대농장주들, 독일 통치시대에 정착한 독일인들, 남아공 신탁 통치 때 이주한 영국계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나미비아로 건너와 살았습니다. 대농장, 주요 경제포스트를 그들이 차지했을 거란 상상이 갑니다. 그들은 나미비아가 독립하며 나미비아인이 되었을 테구요. 그동안 누린 경제적 지위 역시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을까요? 박물관에 가니 초대 내각 임원들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모두들 검은 얼굴인데 백인이 한 명 섞여있더군요. 우리나라로 보면 경제, 재무장관이었습니다.
세상의 원리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미국 독립전쟁은 인디언과 백인의 전쟁이 아닌 백인과 백인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2세는 아메리카에서 생산한 부를 영국왕실이 가져가는 걸 원치 않았겠죠. 아버지는 점령군이었지만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아들은 이제 입장이 다릅니다. 어느새 피지배자가 된 것입니다.
믿기 어려운 역사적 진실을 살펴볼까요? 최초의 메스티조를 낳은 여자는 말린체입니다. 마야와 아즈텍을 멸망시킨 코르데가의 여자이기 때문에 멕시코에서는 더러운 배신자로 불립니다. 그녀는 코르데가의 아기를 낳습니다. 최초의 메스티조의 탄생입니다. 코르데가는 정실로부터도 남자애를 낳습니다. 두 아들은 후에 커서 한 명은 메스티조의 리더로, 한 명은 현지에 태어난 스페인계 아메리카노의 리더로서 독립전쟁을 이끕니다. 모순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역사가 나미비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나미비아를 상상하며 커다란 역사의 틀 안에 넣어 봅니다.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