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당시 개들은 부르조아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도처에서 도살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의 여진은 수십 년 후 서울에 사는 필자의 집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후반 필자의 집에는 중국인 몇 명이 찾아 와서 집에서 키우고 있던 시추들을 자신들에게 팔라고 요구했다.
어머니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도 궁금하셨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국인들이 중국이 원산지인 시츄를 우리나라에서 찾는지를 더 궁금해 하셨다. 마치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진돗개나 풍산개를 찾으러 다니는 것과 비슷하였다고 한다.
당시 필자의 집을 방문한 중국인들의 발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많은 중국 개들이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죽었나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흥하다 보니, 과거에는 경시하였던 전통의 가치가 중시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중국이 원산지인 페키니즈, 시츄와 같은 개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는 괜찮은 시추나 페키니즈가 없다. 만약 그런 개가 있다고 해도 워낙 오랜 세월 방치되면서 거의 잡종이 되고 말았다. 아쉽지만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시츄와 페키니즈를 구입하여 다시 중국에서 키울 수밖에 없다. 그래야 중국이 고향인 개들의 혈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
중국의 불행했던 근현대사를 통해 시추, 페키니즈는 비의도적으로 외국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그 때 외국으로 나갔던 중국 개들의 후손들이 본국에서는 사실상 멸절된 친척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귀국하고 있다. 역사란 이렇게 아이러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