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작은 포식자인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자신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받게 되었다. 인간 세상에는 고양이를 해치는 포식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과의 동거를 택하기 이전의 고양이의 처지는 그렇지 않았다. 고양이는 설치류 같은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는 포식자가 분명하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큰 다른 중대형 포식자들의 공격을 언제 받을지 모를 중간포식자였다.
고양이의 선조 같은 동물들은 긴박한 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벗어날 자신만의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고양이의 컨티전시 플랜은 천적이 도저히 침입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자신만의 피난처인 높은 나무 위로 오르는 것이다.
고양이는 발톱이 상당히 날카롭고, 뒷다리의 근육이 매우 발달한 동물이다. 이러한 고양이의 체구는 멀리 도약하거나 사냥을 할 때 효과적이다. 그런데 천적의 추격을 피해 자신 만의 숨을 곳으로 도망을 치는데도 매우 효율적이기도 하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은 마치 미끄러운 빙벽에서도 균형을 잡고 위로 오를 수 있게 하는 아이젠(eisen)과 같은 역할을 한다. 고양이는 하늘이 부여한 자연산 아이젠으로 나무껍질을 찍으면서 밑으로 미끄러지지 않는다. 또한 튼튼한 뒷다리의 근육으로 나무 위로 오른다. 이렇게 고양이는 모든 물체는 지구의 중심이 아래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거스르고 나무 위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나무 위에 잘 오르지 못하는 덩치 큰 동물들은 사냥감인 고양이가 나무 위로 오르면 더 이상 추격할 수 없다. 그런 동물들이 나무 아래에서 아무리 고양이를 위협해도 일단 높은 나무 위에 오른 고양이는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모든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다. 시간은 고양이의 편이지 나무 아래의 맹수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높이의 위치에 고양이가 있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진 속의 고양이는 자신의 뒤를 추격하는 개를 피해 나무 위로 오른 것이다. 2015년 1월 촬영 |
그런데 고양이는 도주의 목적으로만 나무 위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동물이다. 이는 고양이의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본능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사냥꾼이면서도 사냥감이 될 수 있는 처지이니 세상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나무 위의 높은 곳은 마치 고층아파트 베란다 같이 좋은 전망을 제공한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다른 동물의 움직임은 물론 친구의 접근, 먹잇감의 행보도 파악 가능하다.
그러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다. 천적의 추격을 피하고 먹잇감 사냥에 유리한 위치가 높은 나무 위가 되는 것이다.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따끈따끈한 핫 플레이스(hot place)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집고양이들도 여전히 선조들의 습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실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롱이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거나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특정 집고양이만이 하는 이상행동(abnormal behavior)이 아니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 고양이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