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삶은 사진처럼 험난하기만 하다. 2011년 과천에서 촬영 |
[노트펫] 길고양이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길고양이도 어린 시절에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낳아준 어미 길고양이가 그랬기 때문이다.
어미 고양이는 오래 전 자신의 어미로부터 받은 사랑을 자신의 새끼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하고 소박하지만 배를 곯지 않을 수준의 음식을 제공한다. 아마 그 시절이 길고양이의 전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분석한 것이니 지나친 의인화(擬人化)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어린 길고양이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새끼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어미는 자신의 다른 삶을 찾아 떠나기 때문이다. 한 번 떠난 어미는 다시는 자신의 새끼를 찾지 않는다. 그 다음의 일은 새끼 고양이의 운명이다. 냉혹하지만 그게 야생동물의 삶이다.
사람의 눈에는 길고양이나 집고양이나 같은 동물처럼 보인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도 같다. 하지만 생태학적으로는 그 위치가 전혀 다른 존재다. 길고양이는 야생동물인 반면 집고양이는 사람과 같이 사는 반려동물이다.
어미와의 인연이 끝난 새끼 고양이는 어미로부터 배운 여러 지혜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하루하루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힘든 시간이 계속되면서 어미와의 추억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송두리째 버리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성체가 되어서도 자신의 기억의 저 편에서 항상 마음속에 담아둔다.
새끼 길고양이들이 열심히 장난치고 있다. 2019년 인천에서 촬영 |
얼마 전, 오랜 만에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았다. 그 아파트에는 필자의 여러 추억이 남아있다. 몸은 떠났지만 추억은 여전히 그 아파트에 묶여 있는 것 같다. 그 추억들 중에는 아파트상가에 대한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에 관한 것이다.
상가의 어느 상인은 평소 길고양이들을 잘 돌봐줬다. 그런데 그 중에는 한겨울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기르기도 했다. 끝난 줄 알았던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 다시 찾은 그 가계에는 익숙한 존재가 보였다. 출산이 멀지 않아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물었다.
상인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몇 년 전 그곳에서 태어난 새끼로 보인다고 했다. 만약 그 주인의 짐작대로라면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그 새끼도 그 곳을 다시 찾아서 출산하려는 것이다.
대화를 마치고 귀가를 하면서 내내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물론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상인은 필자에게 몇 번 새끼 고양이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그 아저씨의 걱정을 불식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등장한 것 같아 보였다. 자신이 어릴 적 받았던 은혜를 자신의 출현으로 갚은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 쓴 글을 읽어보니 왠지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