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주연의 첩보영화 '쉬리'가 개봉했다. 쉬리는 그해 600만이 넘는 관객몰이를 하면서 한국 영화사의 이정표를 세웠다.
쉬리는 그간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거둔 흥행을 깨버리면서 국산 영화의 대박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최초의 영화였다. 그래서 한국 영화는 쉬리 이전과 쉬리 이후로 나뉜다는 극찬도 받았다.
짝이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키싱구라미.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싸우는 모습이라고 한다. |
영화가 대박을 치면 사회의 관심도 쏠리기 마련. 영화 열풍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 키싱구라미(Kissing gourami)라는 열대어였다.
몸길이 약 30cm에 일반 가정이나 수족관 등에서 관상용으로 키우기 좋은 종으로 꼽힌다. 영화 제목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했던 잉어과의 민물고기 쉬리의 인기에 못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의 첩보원으로 사랑에 빠졌던 한석규와 김윤진이 키싱구라미가 담겨 있는 수조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짝이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키싱구라미의 특성과 오버랩되면서 키싱구라미는 영원한 사랑의 징표가 됐던 것.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때 키싱구라미 열풍은 애완동물으로서 물고기의 매력이 정점을 찍은 시기였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1997년 2월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전체의 25%에 달했다. 물고기는 무려 8%로 개(16%)에 이어 당당히 2위였다. 당시 고양이 인구는 1%에 불과했다.
2002년 9월이 되면 물고기는 0.1%로 거의 절멸하다시피했다. 2015년 9월 현재도 1%에 불과, 물고기의 인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물고기의 몰락은 극적이다.
IMF 외환위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국갤럽은 "많은 집에서 길러졌던 물고기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원인은 1997년 12월의 IMF 구제금융 신청 사태"라며 "우리나라의 대다수 기업과 가정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한때 사람과 함께했던 동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적 어려움에 영화 속에 나왔던 수조는 처분 대상 목록의 상위권에 올랐을 것이라는 추정인 셈. 또 사람과 함께 호흡하지 않고 다만 보는 즐거움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물고기를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 왔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의 선호도 조사를 보면 1993년은 물고기는 11%로 개(19%)에 이어 2위였고, 1997년에는 13%(개 23%)에 이어 선호율이 더 높아졌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여러 조사에서는 1%를 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물고기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다시 물고기에게 봄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