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호랑이 고기를 먹다①
큐슈(九州)의 맹주였던 시마즈(島津) 가문을 복속시키며 일본 전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자신의 대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1589년 애첩인 요도 도노가 쓰루마쓰라는 늦둥이 아들을 출산하면서 해결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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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7년생인 히데요시는 만 52세 나이로 귀한 아들을 얻었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의 차기 간파쿠(関白)가 될 것 같았던 그 아이는 불과 삼년 뒤인 1591년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낙담한 히데요시는 1591년 자신의 조카인 히데쓰구를 양자로 맞이하고 그에게 내각의 책임자 자리인 간파쿠를 양도한다. 하지만 본인은 간파쿠보다 더 높은 직책인 타이코우(太閤)로 오른다. 사실상 왕의 역할로 스스로 오른 것이다.
그런데 히데요시의 심리 속에는 아들이 아닌 조카를 후계자로 삼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아쉬움은 자신의 사후 큰 비극을 부르는 원인이 되고 만다.
대단한 망상가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정복하여 천하의 주인이 되겠다는 헛된 욕망에 잡혀 159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영지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서 16만 대군을 긁어 모아 조선으로 출병시킨다. 조선과 일본은 7년 전쟁인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1592년 12월 14일 조선으로 간 일본 장수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희한한 명령을 내린다. "조선에서 호랑이를 잡아 바쳐라"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2군 대장으로 악행을 일삼았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 왜군 장수들은 자신들의 주군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경쟁적으로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들이게 된다.
예로부터 아시아지역에서는 호랑이와 표범 같은 빅 캣의 고기와 뼈는 장수와 정력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부호들은 빅 캣의 고기, 뼈를 고가에 구입하여 약으로 사용하였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