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의 변화를 낳은 대전환은 사소한 기구의 발명에서 시작한다. 화약을 만든 중국은 초기 단계의 총을 만들어 냈다. 중국의 농민은 이 총을 들고 지배자인 몽골의 기마병과 맞섰고 결국 중국에서 몽골을 몰아냈다. 끄떡없을 것 같던 몽골을 중원에서 쫓아낸 영웅담은 유라시아 대륙을 그물망처럼 이어놓은 팍스 몽고리안 루트를 타고 유럽으로 전해졌다. 무기로써 총은 형편없었지만 총이 가져다준 건 가능성과 희망이었다.
총은 유럽에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화승총으로 태어나고 전쟁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며 전쟁의 판도뿐 아니라 세력의 판도도 바꾸어 놓았다. 바야흐로 유럽의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 열린 것이다.
15세기 화승총으로 무장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리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 아니 아프리카 세력을 몰아내고 유럽의 강국이 된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유럽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콜롬버스다. 그는 바다로 중국에 갈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엉뚱한 발상을 하였고 10년이나 꿈을 실현하는 데 인생을 바쳤다. 그의 엉뚱한 발상과 집념이 아니었다면 신대륙이라 불리는 아메리카가 유럽의 선물이 되지 않았을테다.
또 구대륙의 강자인 오스만투르크나 청나라, 무굴제국에 뒤쳐져있던 유럽이 세상의 주인으로 우뚝서지 못했을지 모른다. 신대륙의 금이 유럽의 산업화를 앞당겼고 그 결과 중동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주인자리에 올라섰으니 콜롬버스의 엉뚱한 발상은 유럽의 축복이라고 할 수 밖에..
그런데 콜럼버스에게 엉뚱한 발상을 하게끔 영감을 준 사람이 있다. 그는 과학자도, 철학자도 그렇다고 성직자도 아닌 콜럼버스 만큼이나 엉뚱한 남자 마르코 폴로다. 그가 동방 견문록에서 과장을 조금만 덜 했더라도 중국에 가려는 콜럼버스의 열망이 좀 덜하지 않았을까…
여행자는 세상을 먼저 보고 이를 전하는 메신저로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떠날 용기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여행자의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고 꿈을 키웠다. 그 메신저가 마르코 폴로였고 꿈꾸는 소년이 콜럼버스였다. 이들의 꿈은 위대한 발견을 낳아 유럽을 세상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여행을 주저해서는 안 될 일이다.
10만년 전, 동아프리카를 떠난 200여명의 여행자가 있었고 그대로 아프리카에 남은 2,000만명이 있었다. 200명은 시나이 반도에서 유럽, 시베리아, 남방 아시아로 여행을 계속했고 결국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까지 닿았다. 현생인류 진화의 뿌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확장되고 번식해 갔다. 반면 아프리카에 남은 사람들은 1만년 후 닥친 기후변화로 대멸종을 겪는다.
그리고 아시아, 유럽이 세상을 호령할 때 숨 죽이고 핍박받는 아프리카인이 되었다. 그러니 여행을 주저해서는 안될 일이다. 반도, 그것도 절반이 짤려 사면이 막힌 섬보다 못한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여행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바로 생존이다. 여행은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토대가 되어준 아메리카, 나는 그곳으로 떠나는 여행자다. 마르코 폴로같이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콜럼버스같이 엉뚱한 일을 벌리지도 못하겠지만 21세기의 여행자는 21세기의 감성과 눈으로 세상을 보며 한발한발 미지의 세상으로 여행을 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