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3부
1970년대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는 가족. 2021년 7월 수도산박물관에서 촬영 |
[노트펫] 긴 겨울이 지나면 프로 야구 시즌이 개막된다. 일단 리그 일정이 시작되면 선수들은 마치 공무원처럼 매일 같이 운동장에 출근해서 시합한다. 장장 8개월 동안 진행되는 야구의 시간도 날이 추워지면 시들게 된다. 영하의 날씨에 손을 호호 불면서 공을 던지거나 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야구가 팬들의 아쉬운 작별을 구하면 배구의 시간이 바로 찾아온다. 날씨와 상관없는 체육관 스포츠의 대명사인 배구는 겨울이 되면 더욱 환하게 빛을 밝힌다. 그래서 대한민국 스포츠팬이라면 연중 축구, 야구, 배구, 농구 같은 구기종목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프로 스포츠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4대 구기종목 중에서 가장 먼저 출발한 프로 야구도 1982년 출발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이런 호사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의 일이었다.
1970년대도 국내에는 스포츠팬이 많았다. 그 당시 팬들의 갈증은 권투와 레슬링이 풀어주었다. 야구와 배구 같은 구기종목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선수와 코치진 그리고 연습장과 숙소 같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모(母) 구단 같은 든든한 지원을 해줄 확실한 스폰서가 있어야 한다. 그 당시는 그런 지원을 할 만한 국내 기업이 없었다.
하지만 격투기 종목은 구기 종목과는 달리 그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더구나 수준급 선수들도 많아 프로화가 용이했다. 그 결과 권투와 레슬링은 상당히 높은 인기를 누렸다.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는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시끄럽게 떠들며 보는 게 재밌다.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다. 물론 사람들 가운데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놓여 있으면 더 좋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TV가 없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재미있는 시합이 열리면 염치불구하고 그 집에 가서 주인이랑 같이 보는 이웃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는 집에 TV가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기 위해 원정 시청을 하는 이도 있었다.
1970년대 엄청 난 인기를 누렸던 레슬러들. 왼쪽부터 김일, 장영철, 천규덕의 모습. (JTBC 뉴스화면) |
1974년 봄 어느 날 김일, 천규덕, 여건부 같은 기라성 같은 레슬링 스타들이 총 출동한 시합이 있었다. 필자의 집은 동네 사랑방과 다름없었다. 메인 경기가 열리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경기 시청이 끝나면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종종 뒤풀이를 하곤 했다.
부산은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아서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수돗가가 밖에 있었다. 손님 한 분이 손을 씻기 위해 비누를 잡다가 다시 놓고 말았다. 쥐가 갉은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아버지에게 “형님, 고양이 한 마리 키우실래요? 두 달 된 새끼가 집에 있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 같았다. 그 분 말씀을 종합하면 대략 이렇다.
그해 2월초 마당에 느닷없이 배부른 길고양이가 들어와서 4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 중 두 마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어, 두 마리만 남았다. 어미는 새끼가 자기 앞가림을 할 정도로 크니까 얼마 전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남은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자기 집에서 어미 대신 키울 것이고 다른 한 마리는 좋은 사람 집에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낮은 목소리로 “데리고 와요.”라면서 아버지의 옆구리를 찔렀다. 결국 새끼 고양이는 우리 집 새 식구가 되었다. 그날 밤 너무 좋아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거실의 뻐꾸기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드디어 고양이의 주인이 되는구나!”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