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4부 : 고양이 이름 지어주기
[노트펫] 1974년 4월 어느 날, 노란 무늬를 한 작은 천사가 우리 집 문지방을 넘었다. 그렇게 예쁜 작은 생명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생후 2개월짜리 고양이의 매력에 온가족이 열광했다.
새끼 고양이를 보내 준 털 복숭이 아저씨가 마치 산타클로스 같게 느껴졌다. 요즘 말로는 코리안 쇼트 헤어 치즈 태비(Korean short-haired cheese tabby)라고 할 수 있다.
뜨거운 환영이 지나자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모아 작은 ‘꼬물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울지 말씀해주셨다. 할아버지는 동물과 식물 키우기의 대가였다. 뭐든 할아버지의 손을 거치면 쑥쑥 잘 자라고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을 가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소에게 여물을 주고, 농사를 지은 전직 농부였다. 그러니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들 내외나 손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자였다.
할아버지 말씀은 대략 이런 뜻이었다. 고양이라는 영특한 동물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지금 이 집이 자신의 집이며, 여기 사는 우리들이 자신의 가족이고 보호자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당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보니 머리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결론은 오늘부터 최소 2주일 이상은 당신 방에서 꼬물이를 당신이 직접 키울 것이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할아버지가 집에서 왕(王)과 같았다. 나이 마흔의 필자의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는 감히 말대꾸도 못하였다. 할아버지는 작은 박스를 방에 놓고, 그 안에 꼬물이를 먹이고 재웠다. 존경심이 들 정도로 잘 키우셨다.
약속한 2주일이 흐르고,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다시 소집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고양이 이름을 짓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아들은 물론 손자들의 이름까지 전부 지은 경력이 있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꼬물이 이름을 작명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동안 조용하던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주장한 이름은 이웃집 고양이들의 이름과 같은 ‘나비’였다. 아버지가 진부한 이름인 나비를 꺼낸 것은 권투와 쥐 때문이다. 평소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던 아버지는 권투를 제일 좋아했다. 그런데 체중 50kg 내외의 경량급보다는 체중 100kg을 넘는 거구들의 시합을 좋아했다.
독보적인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가 남긴 명언이 아버지의 가슴에 깊이 꽂힌 것 같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고양이가 나비처럼 부드럽게 날아서 벌처럼 쥐를 물어버렸으면 좋겠다.” 했다. 쥐에 대한 깊은 분노가 있던 가족 모두는 전폭적으로 나비를 지지했다.
나비의 이름이 정해진 바로 그날 저녁, 아버지는 그동안 몰랐던 우리집 강아지 빠루의 입양 이야기를 해주셨다. 빠루도 나비처럼 스포츠 중계를 같이 보던 친한 이웃집 아저씨가 개가 없어서 도둑 걱정을 하던 아버지에게 준 선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웃은 일 년 전 이사를 가서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빠루는 이산가족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빠루나 나비나 김일, 천규덕, 무하마드 알리 같은 동서양의 격투기 스타들이 데려다 준 꼬물이 출신들이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