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빠루] 제 12부
[노트펫] ‘좀’은 나무에 붙어 껍질과 속을 파먹는 작은 곤충이다. 그래서인지 좀이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에 접두어(prefix, 接頭語)로 사용되면 그 행동이나 생각이 대범하지 않고 치졸하거나 옹졸하다는 의미를 가지곤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 앞에 좀이 붙은 ‘좀도둑’은 부잣집에서 돈이 되는 물건을 훔치지 않고, 가난하거나 평범한 집에서 생활필수품 같은 그런 자질구레한 것까지 훔쳐가는 치졸한 도둑을 의미한다. 1970년대만 해도 그런 좀도둑들의 전성시대였다.
당시 많은 단독주택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은 주거공간인 본채와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주방은 난방과 요리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하여서 본채와는 연결된 구조였지만, 화장실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완전히 분리된 별채 구조였다. 필자의 집도 그랬다.
화장실이 본채와 떨어져 있으면 불편한 점이 많다, 특히 밤이 되면 그 불편함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방안 구석에 휴대용 소변 기구인 요강을 놓고 잠을 잤다. 요강은 건장한 성인보다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밤에 소변을 보는 경우도 많고, 겁이 많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화장실 귀신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밤만 되면 전국의 아이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던 화장실 귀신들은 우리나라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제일 먼저 냄새나는 요강부터 방에서 치웠다. 아이들을 깨우고 이불을 정리하는 일은 그 다음 순위였다. 식사 준비를 어머니가 하다 보니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분업이었다.
매사 철저한 성격의 아버지는 허투루 요강을 씻지 않았다. 매번 빨래비누로 거품을 내며 깨끗하게 요강을 씻었다. 그렇게 씻긴 요강은 마당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놓여졌다. 보급형 도자기인 요강도 이렇게 볕을 받으면 제법 반짝이며 멋있게 보였다. 마치 어제 도자기를 굽는 가마인 도요(陶窯)에서 꺼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귀가를 해보니 마당에 뭔가 공허함이 느껴졌다. 늘 보이던 반짝이던 요강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모양도 색깔도 예쁘지 않은 볼품없는 요강 하나가 구석에서 보였다. 낮에 도둑이 들어서 요강을 훔쳐간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소 빠루를 데리고 낮에 30여분 산책을 하곤 했다. 바로 그날 대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좀도둑은 그런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보물1호인 요강을 훔쳐간 것이다.
철없던 시절 필자는 빠루에 대해 장난을 좋아하고 낮잠을 즐기는 팔자 좋은 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강 도난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 빠루 덕분에 좀도둑이 우리집 담을 감히 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빠루는 어린이의 눈에는 하얗고 귀엽기만 한 강아지였지만, 좀도둑에게는 뚫기 어려운 까다로운 번견(guard dog, 番犬)이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