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완연한 봄이다. 꽃샘추위도 끝난 것 같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땅속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새싹이 움튼다. 몇 달 동안 잠을 자던 동물들도 기지개를 펴고 움직인다. 영어로 봄은 스프링(spring)이다. 스프링은 봄이라는 의미의 명사가 아닌 ‘식물의 싹이 트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사용된다. 계절의 특징에 부합한다.
고양이의 평균 체온은 38~39도다. 사람보다 대략 2도 이상 높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는 유독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더워서 견디기 어려운 장소라도 고양이는 마치 편안한 침대에 누운 것처럼 장시간 식빵 자세를 취할 수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주방에 있던 연탄아궁이를 파고들었다. 당시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나비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날이 추우면 나비의 예쁜 얼굴에 연탄 가루가 묻어 있곤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숯 범벅인 나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하룻밤을 지나면 다시 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나비의 검은 얼굴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손자에게 “옛 사람들은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지게 된다고 했다. 나비는 연탄을 가까이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면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사자성어를 말씀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내 화로(火爐) 근처에서 수많은 빵을 굽던 고양이라도 봄이 되면 태세 전환을 했다. 계절의 변화에 순응한 것이다. 3월 하순이 되면 겨울과는 달리 뜨거운 화로를 보다 멀리서 즐겼다. 그러면서 나비는 하루가 달리 자신의 미모를 점점 되찾았다. 치즈 태비의 화려한 모습은 봄과 함께 찾아왔다.
봄은 화려한 계절이다. 겨우내 무채색이었던 대지에 봄이라는 화가는 자신만의 붓을 들고 여러 색깔로 개성 있게 물을 들인다.
화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은 연한 초록색이다. 대지의 새싹과 나무의 새잎에 그 색을 과감하게 터치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용한다. 다음은 노란색, 분홍색, 붉은색이다. 여러 꽃들의 잎을 표현하기 위해 점같이 콕콕 찍어 사용하는 색이다. 식물의 색이 완성되면 나비, 꿀벌 같이 겨울에는 보이지 않던 다양한 색을 가진 곤충들도 하늘을 한다.
하지만 1970년대 봄은 나비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봄은 겨우내 나비의 털에 묻었던 나비의 검은색을 털어 내줬을 뿐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나비는 완벽해졌다. 나비는 원래 손을 댈 것이 없는 아름다운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