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빠루] 제 37부
[노트펫] 호랑이와 여우는 전래동화의 단골손님이다. 동화 속 두 동물은 각각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호랑이는 그 힘을 당할 수 없지만 영리하지 않아 결국 사람에게 당한다. 여우는 힘이 세지는 않지만 영리한 두뇌로 주변 사람들을 위기로 몬다. 하지만 여우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자신보다 더 영리한 사람에게 당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여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국의 설화에 등장한다. 동서양을 공히 대표하는 장난꾸러기 트릭스터(trickster)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영화 토르(Thor)의 감칠맛을 주는 존재인 로키(Loki)와 비슷한 역할을 여러 나라의 이야기에서 한다.
영리한 여우는 호랑이 같은 힘이 세고 덩치 큰 존재의 권세를 빌리는 동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여우가 자신의 뒤에 있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권세를 자랑한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가 그렇다. 여우는 호랑이에게 한입꺼리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공상의 결과물이다.
여우는 우리 선조와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우의 멸종에 대해 서식지 파괴, 남획, 구서용(驅鼠用) 쥐약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럽이나 북미에는 여우가 흔한 동물이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여우와 같은 종인 붉은여우(red fox)다.
미국 교외에서 여우는 코요테(coyote)처럼 흔하다. 코요테도 북미에선 트릭스터다. 시바견(柴犬), 코커 스파니엘(cocker spaniel) 정도 크기에 불과한 두 동물은 설치류 사냥에 탁월하다. 중간 포식자에 해당되는 두 동물이 쥐나 토끼를 물고 다니는 것을 몇 번 본적도 있다.
육식만할 것 같은 여우는 초식도 즐긴다. 몇 년 전 미국 미드 웨스트(Midwest)의 교외에 거주하던 필자의 지인은 백야드(backyard)에서 여우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당시 지인이 키우던 관상용 양배추에 여우가 속을 파고 있었다. 여우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겁내므로 괴성을 듣고 빛의 속도로 도망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양배추는 회복 불능 상태였다.
필자가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황토색 토이 푸들(toy poodle)이 있다. 산책길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민들에게 엄청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견주에게 “작은 푸들이 엄청 용감하네요.”라고 말은 꺼냈다. 그 분은 겸연쩍었는지 머리를 긁으며 “집에서는 얌전한데, 밖에만 나오면 자기가 마치 호랑이라도 된 줄 알아요.”라고 대답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스피츠견 빠루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마치 호랑이처럼 갑자기 용맹해진 개 때문에 무척 난처한 적이 있었다. 귀가 후 “빠루가 미친 것 같아요. 진돗개에게 덤벼들려 해요.”라고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느닷없이 “축하단다.”며 “빠루는 너를 주인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것도 든든한 주인으로.”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주신 말씀이 호가호위였다. 이야기 속 여우는 빠루, 호랑이는 초등학생 필자였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 가지 주의를 주셨다. “앞으로 개와 외출을 할 때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너를 호랑이라고 믿는 이상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을 수 있단다.”
그 다음부터는 빠루와 외출을 할 때 목줄을 가급적 짧게 잡고 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빠루의 용맹함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