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에 3시간 넘게 울던 고양이에 문열어준 커플
[노트펫] "만약 태풍이 오는날 고양이가 "아이고~ 선생님 하룻밤만 재워주세요~"하면 재워줄거야 했었는데...."
농담삼아 했던 말이 현실이 돼 고양이를 키우게 된 커플의 사연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주 생활 9개월 차에 접어든 정진 씨와 여자 친구. 지난 8월까지 둘이서 제주의 낯선 환경에 부대끼면서 알콩달콩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9월 뜻밖의 식구를 맞이하게 됐는데요.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계기가 묘합니다. 영남 일대를 할퀴고 간 태풍 힌남노였거든요.
제주를 끼고 북동진한 뒤 상륙해 포항과 경주 등 영남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안긴 힌남노. 직접 상륙은 하지 않았지만 제주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힌남노가 뿜어댔던 바람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정진 씨 커플로서는 제주 와서 처음 겪게 된 태풍이 힌남노였다고 하는데요. 제주가 힌남노의 영향권에 제대로 들었던 9월5일 저녁.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정말 밖에 못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창문을 때리는 어마한 바람 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평소 취미로 해오던 인터넷 방송을 하던 그때. 정진 씨가 문밖에서 나는 고양이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살고 있는 건물 주변에 고양이들을 봐온 만큼 길고양이가 우는가 보다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 자려고 인터넷 방송을 끄고 집안이 조용해지자 그 소리는 더욱 생생해졌습니다. 그때까지도 울음을 멈추지 않고 있던 고양이.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이렇게 울어대는 것인지. 하도 우렁차서 다 큰 고양이일 것이라 애써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계속됐고, 궁금해진 정진 씨가 바깥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문앞에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서있었습니다. 정진 씨가 어어하는 사이 그 녀석은 집안으로 후다닥 들어왔습니다.
집안을 살피는 과정도 없이 바로 여자 친구에게 꾹꾹이를 해대는 이 녀석. 커플은 그 어이없는 모습에 멍해졌습니다. 품종묘인 데다 이미 사람손을 탄 상태로 보였던 이 녀석, 건물에 주인이 있을 것같았습니다.
곧장 이웃에 물어봤더니 이 녀석 내내 복도에 서성대면서 사람들을 따라오려고 했고, 울어댄 시간만 3시간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어마어마한 그때 잠시 데리고 있으면서 주인을 찾아주기로 하고, 중고거래 앱의 커뮤니티는 물론 다른 커뮤니티에 주인 찾는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진 씨 커플에게는 고양이가 생겼습니다.
히노. 고양이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힌남노'에서 따왔습니다. 제주살이하고 맞이한 첫 태풍인데 같이 살아 남았으니 처음과 끝을 같이하자는 의미를 담아 첫글자 '히' 마지막 '노'해서 히노라고 합니다.
예방접종과 검진을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3~4개월쯤 된 어린 고양이라고 했습니다. 샴 그중에서도 링스포인트와 닮아있고요.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비쩍 말랐던 몸에는 살이 붙었고, 이갈이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힘이 붙으면서 점점 천방지축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여 집사는 "신기한게 태풍이 오기 전날 남자 친구에게 만약 태풍이 오는날 고양이가 '아이고~ 선생님 하룻밤만 재워주세요~'하면 재워줄거야 했었다"며 "어쩌면 그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찾아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고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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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 씨는 얼마 전 SNS에 히노의 입양 사실을 공유했습니다. 뭉툭한 꼬리도 귀엽고, 긴 귀를 보면 종종 사막 여우로 착각한다는 정진 씨의 팔불출 자랑도 이어졌습니다. "이쁜 복덩이가 들어왔네요" "엄청 이쁜 아가에게 간택 받으셨군요!!" "아이고 뜻깊어라...♡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등등의 반응들이 나왔는데요. 태풍이 데려다준 히노가 행복 태풍을 선사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