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전문가 이혜원 수의학박사
"동물복지, 감정호소 넘어 데이터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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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이혜원 수의학 박사가 근무하고 있는 충현동물병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딱히 동물복지 정책의 성과라고 할만한 것은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전 정책국장을 역임한 이혜원 수의학박사를 만나 우리나라의 동물복지정책과 수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박사는 한국과 독일에서 수의사 면허를 취득했고, 독일에서는 동물복지를 공부했다. 딱히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국내에서 주목받는 동물복지 전문가다.
'생명을 유지하고 생산 활동을 하는 상태가 얼마나 양호 또는 불량한가를 나타내는 말. 동물에게 주어진 현재의 환경조건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편안한가를 의미. 동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동물보호운동과는 차별화'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내린 동물복지의 정의다. 복지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행복한 삶을 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과 동물의 복지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동물보호와 의미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복지 라는 말이 정부 공식 문서에 등장한 것이 채 10년이 안된다.
이 박사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동물복지에 대한 개념조차 확실하지 않아 5년 정도의 단기간에는 눈에 보이는 동물복지정책의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며 그간의 경험을 더해서 본격적으로 정책에 힘을 실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더이상 개고기 반대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동물 복지를 향상시킬 수는 없다"며 "동물이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잔혹한지 정확한 수치와 근거를 제시해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물복지에 대해 공감한다. 그래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 정책 추진에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육환경 기준은 물론이고 학대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부터 개선해야 할 지 막막해진다.
유럽의 사례를 보자.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르몬 등에 이상이 온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다 보면 반복적인 이상 행동이 잦아지거나 상해,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동물 이상행동을 1에서 10까지의 수치로 계량화해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단지 생명에 대한 존엄만을 이유로 내세우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설득이 절실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또 "반려동물 만이 아닌 농장 · 실험동물까지 그 개념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며 아울러 "동물 복지는 100m 단거리가 아닌 42.195㎞ 마라톤을 하듯 긴 호흡으로 쉬지않고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라 정책국장을 그만두고 이제는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그는 "동물 자체에 관심 없는 사람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다"며 "이것이 우리나라의 동물복지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