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구조론(Plate Tectonics)의 시각으로 보면 안데스는 남아메리카 대륙판이 나스카 해양판과 만나 충돌하면서 나스카 판이 남아메리카 판 아래쪽으로 들어가며 형성된 습곡 현상입니다. 충돌 당시 대륙판이 밀리며 땅이 휘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지상에는 산맥이 형성되었고, 지하에는 지각을 지탱하는 무거운 뿌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각의 뿌리는 뜨거운 맨틀에 서서히 녹아내리게 되고 두께가 얇아지면서 뿌리에서 떨어져 나간 땅은 다시 융기하게 됩니다. 히말라야 역시 약 5,0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온 인도 판이 약 2,500만 년 전쯤 아시아 대륙을 밀며 생겨난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안데스는 약 4,000만 년 전부터 형성이 되었지만 약 200~400만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높이가 2배나 높아지는 급 성장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대륙판의 에너지가 응축되면 지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한바탕 소란을 일으킵니다. 히말라야의 지진, 안데스의 화산은 모두 이렇게 땅의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나스카 판의 저항이 약해지니 남아메리카 판이 힘차게 밀고 들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올해 발생한 칠레의 화산 폭발, 네팔의 지진 모두 지각의 뿌리가 얇아지면서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약 70여 년간 지구 곳곳에서 반복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지진이 크게 발생된 사건을 접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륙은 단단한 대륙괴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대륙의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작은 땅들이 붙어 하나의 대륙 판게아(Pangaea)가 만들어집니다. 판게아의 중심은 아프리카 대륙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평균 고도는 약 670m로 타 대륙과 비교하면 약 400m 정도 높습니다.
특히 중앙아프리카의 웬만한 도시들은 약 2,000m를 넘나듭니다. 이 곳은 산악 지역도 아니며 거대한 고원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땅입니다. 바로 여기가 모든 대륙의 중심입니다. 중심인 만큼 아프리카의 땅은 두텁고 뿌리가 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대륙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른 산맥에 비해 갑작스럽게 융기했다면 생명체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메마른 남미 대륙 중앙과 동부는 거대한 늪지가 되었고, 습윤했을 서부는 약 4,000m의 고원이 되며 거대한 소금 호수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안데스의 생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유니의 형성 과정이 쉽게 이해됩니다. 하지만 시간이란 변수를 생각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바이칼도 바닷물이 갇힌 호수이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담수호가 되었습니다. 바이칼 생태 박물관에는 바다 생물인 해마와 바이칼의 바다표범이 함께 민물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많은 생명체 중 그들만이 살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입니다. 카스피 해(Caspian Sea), 아랄 해(Aral Sea), 중국의 청해, 에티오피아의 다나킬 저지대의 소금 호수 모두 바닷물이 갇혀 만들어진 곳들입니다. 계속해서 담수가 유입되는 바이칼은 담수호가 되었고 증발량이 많아 물의 유입이 전혀 되지 않는 다나킬 사막은 소금 사막이 되었습니다.
아랄 해는 담수의 유입이 줄어들며 호수의 염도가 급격히 높아져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죽은 호수가 되었습니다. 카스피 해도 담수의 유입이 줄어들며 바닷물과 담수 중간 정도의 염분을 유지하다 염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유니는 어느 쪽에 해당될까요, 안데스에 포위되어 있고 사막의 기후이기 때문에 비도 많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나마 북부에서 유입되는 물줄기는 티티카카가 모조리 흡수하여 우유니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지상에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습니다. 약 1,800만 년 전 가장 활발하게 융기한 안데스에 의해 가두어진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녹아 오늘날의 우유니가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일까요, 그렇다면 계속하여 우유니가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금을 캐고 캐도 소금 사막이 넓어진다는 우유니 사막의 나트륨은 어떻게 안데스를 넘어 유입되고 있는 것일까요, 볼리비아 정부가 밤에 몰래 소금을 차로 가져다 놓는 상상도 해봅니다.
소금의 결정 구조는 99%의 염화나트륨 성분입니다. 만약 안데스가 나트륨 성분을 많이 포함한 땅이라면 어떨까요, 안데스는 약 1,800만 년 전에 심한 융기를 하였고 그 때 지금의 산맥과 고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바닷물은 낮은 지역으로 모여들며 우유니에게 넓은 소금 사막을 만들어주었을 테고, 물의 양이 줄어들며 대지는 온통 하얀 소금에 덮였을 것입니다. 또한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동시에 진행된 화산 활동은 나트륨이 뒤범벅된 화산재를 주변에 흩뿌렸을 것입니다.
저의 상상이 이쯤까지 이르렀을 때 안내자 파블로는 저를 소금 블록 공사장으로 안내합니다. 우유니사막에는 호텔, 건물, 식당의 식탁과 의자, 침대 등 모든 조형물이 온통 소금 블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금 블록은 블록 가운데 한두 개의 검은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가볍게 생각하면 남극에서 채취한 얼음으로 지구의 지난 시간을 읽어내듯이 층층이 생긴 역사의 흔적과 같습니다. 그 때 거대한 화산 작용으로 대지를 화산재가 뒤덮었고 빙하기 때 공룡의 멸종을 도래했습니다.
이런 증거들로 소금 블록에 진흙층이 생겼으며 안내자 파블로는 그것이 칸쿤(Cancun)에서 벌어진 공룡 종말의 시나리오와 같은 증거물이 아니겠냐며 흥분하기에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런데 호텔 건물, 박물관, 지나가면서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집들까지 모두 이런 블록으로 만들어져있어 의아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증거물들이 너저분하게 쓰인다면 정말 몇 백만 년 전의 증거물이 맞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소금은 물에 녹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제가 묵은 호텔도 완공된 지 3년이 되었다는데 건물 외벽이 비에 씻겨 곰보 같은 구멍만이 뚫려있을 뿐입니다. 수백 미터 깊이의 방하 소금이라면 믿을 만 하겠지만 땅에 묻힌 채 보존된 약한 소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의문점은 쉽게 풀렸습니다. 파블로가 데려간 사막 한 가운데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고 그 곳에서 소금 블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본 소금 블록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물에 젖은 소금을 거푸집에 넣고 중간 중간 단단히 굳어질 수 있도록 진흙을 조금씩 발라 만듭니다. 이런 공장이 두 곳 더 있다는데 콜차니(Colchani) 마을 전체를 덮을 만큼 많은 블록을 만들어낸 것이 도리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소금을 물에 섞어 거푸집에 넣고 형체를 만들어 햇볕에 말리는 과정만이 다가 아닙니다. 파블로가 가리키는 곳에는 두 개의 웅덩이가 있었고 웅덩이에서는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물의 맛은 적당히 짭짤했습니다. 그의 진지한 설명에 따르면 티티카카 호수에는 35개의 지류가 흘러 들어오고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 나간다고 합니다. 이 물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보보(Booboo) 호수를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보 호수에서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사라집니다.
이 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티티카카에서 흘러나온 물은 지속해서 흘러 들어오지만 보보 호수는 넘치지 않고 항상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어디론가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상으로는 물줄기가 빠져나가는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유니의 비밀의 열쇠는 여기에 있습니다. 보보 호수의 물은 지하로 흐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하수는 우유니에 흘러들어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하나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티티카카의 물은 맹물인데 우유니에 솟구치는 물은 짠물입니다. 물이 지하로 흐르는 동안 소금 광산이라도 지나온 것일까요, 페루에 있는 성스러운 계곡의 염전(Maras Salineras)이 생각납니다. 그 곳의 물로 안데스 빙하가 녹은 물이었으나 소금 암석층을 지나면서 짠맛의 물이 되어 계곡에서 흘러 내립니다. 약 1,800만 년 전의 지진 활동으로 만들어진 안데스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아마도 나트륨과 화산재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유니를 둘러싼 주변은 엄청난 양의 미네랄이 묻혀있습니다. 아마도 바다였을 때 수상 생물과 수초가 만들어준 선물일 것입니다. 우유니에 풍부한 미네랄은 소듐, 리튬, 마그네슘입니다. 리튬은 휴대전화, 전기 자동차 뿐 아니라 여러 2차 전지에 들어가는 기본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볼리비아는 우유니의 소금이 아닌 리튬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유니의 미네랄은 볼리비아의 꿈일 뿐만 아니라 우유니를 만드는 마이다스의 손이기도 합니다.
우유니 소금 판의 특징은 다각을 이루며 잘게 조각나 있고 그 틈으로 소금의 잔재가 피어올라 있습니다. 햇볕에 바짝 마른 소금 판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조각들을 끼워 맞춰 하나의 형상을 그려내는 구조입니다. 미네랄이 소금 결정을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여 지하수에 녹아있는 소금이 결정을 이루며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저는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다나킬의 소금 사막을 상상해봅니다. 그런데 기억에 없는 것인지 우유니 사막과는 다른 것인지 소금 판이 다각의 조각으로 끼워져 있는 것이 생소합니다. 그저 넓고 두꺼운 하나의 소금 원판으로 기억됩니다. 청해나 아랄 해의 소금 결정은 어떤가요, 물이 마른 호숫가에 소금 탑과 불규칙한 소금의 암석들이 기억납니다.
아직은 호수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실려 나가는 티베트의 소금은 다를까요, 티베트의 소금 호수도 우유니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조각을 끼워 맞춘 듯 균열하며 그 틈으로 소금 결정이 솟구쳐 올라 확장되는 메커니즘(Mechanism)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NHK의 우유니 다큐멘터리를 보면 우유니의 소금물로 이틀이면 소금 결정을 만든다고 합니다. 수면에 소금 꽃이 피고 내려앉으면 결정끼리 응고되며 단단한 사각의 소금 결정체가 됩니다. 파블로는 샘 안쪽으로 손을 넣어 소금 결정을 끄집어냅니다. 소금 수정이라며 보여주는 결정체는 유리같이 투명합니다. 또 소금의 결정 구조도 큼지막하여 사각의 결정 구조만 아니라면 정말 수정 같습니다. (수정은 다각의 결정 구조입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소금이 하얗다는 상식마저 깨지는 소금 수정입니다. 소금을 약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끓이게 되면 액체가 되었다가 굳어버립니다. 이럴 경우 소금은 불순물을 모두 증발시켜버리기 때문에 크고 하얀 결정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는 가루이기 때문입니다.
가루 알갱이를 통과하는 빛은 수차례 작은 알갱이를 통과하며 입사하는 방향과 달리 굴절되고 빛의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그 중 일부가 빛이 들어온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서 우리의 눈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소금의 원래 색은 가루가 아닌 결정체 상태의 투명한 물질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이어집니다. 소금 판은 작은 알갱이들일까요? 소금 블록은 고체 상태인데 알갱이로 봐야할까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지만 결정체 사이사이에 공간이 많아 빛이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며 굴절 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유니 소금 사막은 미세한 알갱이들이 서로 결집하여 있고 작은 다각형의 조각들이 들러붙어 거대한 하나의 판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우유니의 실체였습니다.
소금 광산을 거치고 소금 블록을 만드는 샘을 지나면 우유니에 자리 잡고 있는 허름한 호텔에 닿습니다. 지금은 소금 사막 외각에 시설 좋은 소금 호텔이 세 개나 있지만 옛날에는 이 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명소입니다. 그보다는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열악한 화장실을 마주하면 오지 여행인데도 주저하게 됩니다. 남자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여자들은 얼마나 불편할까요, 화장실을 쓰는데 한국 돈으로 약 1,500원 정도이니 유럽보다 비쌉니다.
사막 한 가운데 화장실이 있어 반갑지만 궁금하여 돈을 받는 사람에게 오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에 큰 웅덩이를 파 놓아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나의 오물이 우유니를 더럽힌다고 생각하니 착잡해집니다. 그나마 화장실을 만들지 않는 것보다 이렇게 만들어 웅덩이에 모아 자연적으로 처리되는 것 또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사용료를 많이 받아 한 번이라도 덜 가게 하는 것도 좋은 규제라 생각하며 시설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돈을 내야한다고 핀잔 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유니 소금 사막에는 지금도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유독 가슴을 애달프게 만드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70년대 한 어머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우유니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소금 사막 한 가운데서 지프차가 고장이 났고 어머니는 두 아이를 어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걷지 못하자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손을 잡아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를 안고 뜨거운 소금 사막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유니의 면적은 서울의 약 20배 정도 되고 전라도의 면적쯤 됩니다. 그러니 걸어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과 같이 여행객도 많지 않았을 때 노후화된 한 대의 차량만으로 우유니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 사고는 지금도 가끔씩 일어난다고 합니다. 파블로는 인터넷 뉴스를 보여주며 또 하나의 사건을 설명합니다. 3개월 전 독일 여행객들은 개조한 차량을 가지고 우유니 사막으로 여행을 왔습니다. 그런데 현지 운전사를 고용하지 않았고 차량이 빠지는 사막에 들어섰습니다. 차량은 옴짝달싹 못했고 차량이 다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될 확률도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3일 만에 구조되었다는 기사입니다.
제 전화기는 소금 게스트 하우스나 선인장 섬에서 메시지 전송이 가능합니다. 그만큼 안전해진 세상입니다. 그들도 누군가 목숨을 걸고 통신이 되는 곳까지 나와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요, 설악산에는 희운각이라는 산장이 있습니다. 천불동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공룡 능선이 시작되는 암부에 자리 잡고 있어 서북주능이나 공룡능, 오색에서 대청을 넘어온 사람이 하루 쉬어가기 아주 좋은 자리입니다.
하지만 희운각 산장이 지어진 유래는 슬픕니다. 희운이라는 고등학생이 설악산 등산을 왔다가 비바람에 조난을 당합니다. 희운이는 있는 힘을 다해 설악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양폭 대피소까지 내려오지 못하고 지금의 희운각 자리에서 탈진하여 절명했다고 합니다. 후에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찾고는 '이 곳에 산장이 있었으면 내 아들이 살았을 텐데'라며 슬퍼했고 지금의 희운각 산장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 소금 게스트 하우스도 그런 유래를 갖고 있지는 않을까요, 10개 밖에 되지 않는 방을 운영하며 장사를 하는데 화장실과 점심 식사 장소만 제공되고 숙박은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유니에서는 재미있는 사진을 찍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소인국의 백성이 되기도 하고 거인국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유쾌한 사진들을 남깁니다. 배후에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도화지이다 보니 원근감을 측정할 사물이 없어 마음대로 사진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진 찍기 좋은 곳은 선인장 섬입니다. 사진 찍는 놀이를 하고 섬 정상을 향해 올라가봅니다. 약 1시간 정도의 짧은 산행이지만 선인장 섬의 고도가 약 3,800m이니 만큼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선인장 섬은 약 1,800~2,000만 년 전 안데스가 급격히 융기할 당시 산봉우리였습니다. 주변은 바닷물로 가득했을 테고 유일한 육지인 이 곳에 식물들은 후세를 남기려 애썼을 것입니다. 산 정상이 적지 않게 높은 산이고 약 1,800만 년 전 바닷물의 수위도 정상만큼이나 높았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안데스의 급격한 융기가 주변 생태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 영향의 결과로 증거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선인장 섬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천히 자라는 대표적인 식물이 바로 선인장입니다. 캐나다의 컬럼비아 아이스필드(Colombia Icefield)에 가면 설상차가 지나가는 길가의 나무는 수백 년도 넘은 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제 키보다 작습니다. 찬 기운 때문에 성장이 더디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무였습니다.
다육 식물인 선인장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선인장은 잎이나 줄기가 두툼해 많은 수분을 저장하는 식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겉은 비닐과 같이 방수가 되고 안은 부드러운 섬유질로 부드러운 스펀지같이 촘촘합니다. 이러한 선인장의 섬유질도 나이가 들면 마치 인간의 인대가 탄력을 잃고 굳는 것과 비슷하게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죽은 선인장의 줄기를 보면 섬유질의 기공은 많지만 단단히 굳어 있습니다.
얼마나 단단한지 선인장 줄기로 건물의 서까래, 대문, 쓰레기통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 곳의 선인장은 평균 1년에 1cm 정도 성장하며 가장 나이 많은 선인장이 약 900살인데 9m 정도의 크기입니다. 정상에 올라가면 건너편에 우뚝 서 있지만 그만한 선인장들이 지천이니 여기에서는 수백 년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미나 봅니다.
선인장도 자연의 법칙은 어기지 못해 암컷은 단일 줄기로 서 있지만 수컷은 가지를 둘 셋 뻗어 자태가 아주 화려합니다. 봄철의 짝짓기에 때를 맞춰 그런지 꽃 모양도 수컷은 크고 화려하게 뻗어 나와 있지만 암컷은 작고 줄기에 붙어있습니다. Female Select인 셈입니다.
선인장 섬을 오르다 보면 석회 동굴에서나 볼 수 있는 석회질 찌꺼기가 붙은 암석이 주변을 뒤덮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산호가 죽어 암석이 된 산호 암반도 걷게 됩니다. 이 곳이 안데스의 봉우리로 우뚝 서기 전 바다였다는 증거입니다.
안데스는 약 4,000만 년부터 융기하기 시작하여 약 1,800만 년 전에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선인장 섬은 약 4,000만 년 전에는 물고기들이 뛰어놀기 좋은 석회암 암반의 산호섬이었고 지상으로 올라와서는 선인장들의 보금자리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바다에 있을 때나 지상에 자리 잡고 나서도 생명체의 휴식처 역할을 한 이로운 땅입니다.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투누파 화산(Tunupa Volcano)이 완성도 높은 삼각추 형태로 서 있습니다. 안내자 파블로는 백악기에 마지막으로 터진 화산이라 설명합니다.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아서 다시 어리둥절해 집니다.
백악기는 약 1억 3천만 년 전부터 시작해 약 6,500만 년 전 칸쿤에서 행성이 떨어지며 끝이 납니다. 그 후로는 신생대 3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인장 섬과 투누파 화산은 약 6,500만 년 전에도 바닥이 아닌 바다 속에서 지금의 높이로 우뚝 선 산이었다는 것일까요, 바다였다가 나스카 판에 밀린 지각이 들고 일어나면서 같이 터져 나온 화산이 아닐까요, 백악기가 아닌 신생대 3기가 맞는데 이 친구는 백악기라 우깁니다. 그래도 전문 가이드이니 믿어야지요,
파블로는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말로 저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선인장 섬 아래 지하 도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주장은 티와나쿠에서부터 일관되었는데 티티카카와 티와나쿠, 우유니 선인장 섬 옆의 고대도시 그리고 마추픽추까지 지하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부정하니 화를 냅니다.
우유니의 소금 판은 두께가 약 5m 정도이고 소금 판의 평균 고도차도 약 1m 이내의 평편한 판입니다. 그리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 갈 수 있습니다. 파블로의 말이 맞는다면 고고학자들이 벌써 확인하지 않았을까요, 전혀 어려운 작업이 아닌데 소금 판 아래 남겨진 도시를 그냥 놔둘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그의 말에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파블로는 더욱 흥분해 저를 이해시키려 혈안입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약 2달 전 미국의 고고학자는 마추픽추, 티와나쿠, 우유니 선인장 섬 부근의 소금대지 아래 고대도시가 서로 연결된 지하도로 시스템을 발견했고 이를 증명하는 다큐멘터리가 히스토리 채널에 나왔다고 합니다.
또 약 2년 전 일본의 연구팀은 위성에서 전자파를 쏘아 우유니 아래의 도시와 티티카카로 연결되는 지하 도로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잉카의 신화에는 티티카카와 쿠스코에는 지하도로가 있었고 잉카의 시조 망코 카팍(Manco Capac)과 오요코는 그 지하 도로를 타고 쿠스코로 이동해 왕국을 세웠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티와나쿠와 티티카카 사이에 지하도로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티와나쿠와 우유니를 잇는 지하도로도 있을지 모릅니다. 알티플라노는 아틀란티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