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중세 유럽, 특히 14~15세기 프랑스에서는 오늘날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곤 했다. 살인 저지른 돼지가 사람의 옷을 입고 법정에 서며, 판사는 판결문을 낭독하고 집행관은 교수형을 집행하는 모습이다. 포퓰러사이언스는 최근 보도를 통해 이 기괴한 ‘동물 재판’ 뒤에 숨겨진 사회적, 법적 맥락을 분석했다.

■ “새끼 돼지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 엄격했던 법 집행
기록에 따르면 1457년 프랑스 사비니(Savigny) 마을에서는 암퇘지 한 마리가 5살 아이를 공격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놀라운 점은 이 돼지가 단순히 도축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일한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돼지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주었으며,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함께 현장에 있었던 새끼 돼지 6마리도 공범으로 기소됐으나, 재판부는 “범행에 직접 가담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새끼 돼지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어미 돼지는 유죄가 확정되어 마을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 왜 돼지에게 ‘조끼와 장갑’을 입혔나?
1386년 팔레즈(Falaise)에서 벌어진 재판은 더욱 상징적이다. 아이를 살해한 돼지를 처형하기 전, 사람들은 돼지에게 조끼와 바지, 장갑을 입히고 심지어 얼굴에는 사람 가면을 씌우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도덕적 주체’로 격상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분석한다. 동물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신이 만든 세계의 질서를 파괴한 비극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동물을 의인화하여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것이다.
■ 단순한 광기인가, 고도의 통치 수단인가?
포퓰러사이언스는 이 재판들이 단순한 미신이나 광기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 사법적 권위의 확립: 동물을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은 곧 그 지역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영주의 강력한 사법권을 상징했다. 전문 집행관을 파견하고 거액의 재판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 자체가 공권력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 사적 보복 금지: 만약 주인이 돼지를 임의로 죽이거나 피해 유가족이 직접 복수하게 둔다면 법질서가 무너질 수 있었다. 국가가 개입해 ‘합법적 절차’를 밟음으로써 사회적 분노를 잠재우고 평화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 가축화 이전의 돼지, ‘위험한 이웃’
당시의 돼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가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목되어 자란 돼지들은 야생 멧돼지와 흡사한 공격성을 가졌으며,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마을을 배회하며 아이들을 공격하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중세의 동물 재판은 예상치 못한 비극적 사고 앞에서 인간이 발휘한 ‘법치주의적 대응’의 초기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현대의 시각에선 기괴해 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재판은 깨진 세상의 이치를 바로잡는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