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콜럼버스와 피사로, 코르데스의 후손들은 얼마나 영광스럽게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그들의 삶을 추적해 봅니다. 콜럼버스의 말년은 총독의 지위, 재산을 박탈당하고 아주 불우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왕실에 청원을 수차례 넣었지만, 왕실은 그를 외면했고, 좌절감과 관절염에 시달리다가 1506년 55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죽거든 라틴아메리카에 묻어다오. 죽어서도 스페인 땅에 발을 닿게 하지 않을 것이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을까요.
스페인 왕실에서는 아무도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의 후손들도 왕실의 특혜를 받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페인 왕실이 앞서간 사람은 앞에서 날아오는 총알이 아니라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에 맞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도미니카에 묻혔다가 쿠바로 옮겨져 아바나의 대성당에 머물렀고 100년이 지나 스페인 땅을 밟았지만, 유언대로 관을 한 번도 땅에 내려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발 뒤에 따라간 코르데스는 좀 나아 보입니다. 그는 아즈텍에 스페인의 영광을 심고 24년 만에 귀향하였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성대한 환영 행사를 베풀어 주었으며, 후작 작위와 영지를 하사하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왕실은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몇 번의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며 재산을 모두 탕진하여 여유롭지 못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코르데스는 수명을 다하여 61세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만, 불행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르데스는 백인 부인으로부터 난 아들과 원주민인 말린체로부터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이 의기투합해 멕시코 독립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죽음으로 끝났고 코르데스의 집안도 풍비박산 났을 테니 콜럼버스보다 나을 게 하나 없어 보입니다.
두 발 늦게 출발한 피사로는 더 나아 보입니다. 키토의 잉카 황족 여인을 두 명이나 아내로 받아들였고 네 명의 자손을 남겼습니다. 자식 중 셋은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 딸은 천수를 누렸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프란시스카 피사로유판키(Francisca Pizarro Yupanqui)’, 인데, 그녀는 스페인 왕실로부터 잉카 황실의 혈통이자 피사로 후작 작위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피사로 가문의 혈통을 이었습니다.
피사로 가문은 콜럼버스나 코르데스와 달리 스페인의 귀족으로 대를 이어갔고, 현재도 스페인과 페루에서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피사로의 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개인은 처참하게 살해되었지만 가장 성공한 인물로 보입니다.
세 발 늦게 출발한 마젤란은 어떤가요? 그는 필리핀 세부에서 죽었고 그의 탐험선은 3년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위대한 항해를 기록한 ‘세계일주’는 그 시대에 출간되지 못하고 300년이 지난 1800년이 돼서야 출간되었습니다. 당대 인정받지 못했으니 가족도 헐벗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고, 조롱 이외에는 남은 게 하나 없습니다.
초기의 원정대를 통치에서 배제하고 본국에서 훈련된 관리들을 파견하여 식민통치를 이어가는 건 올바른 순서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백인 계층 안에 사회적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같은 스페인 피를 받은 백인이면서 식민지 출생은 끄리올요(Criollos), 스페인 본토출생은 페닌술라레스(Peninsulares)로신분이 구분되면서 백인 간에도 차등이 생겨납니다. 스페인 왕실은 왕실을 위해 식민지에 가서 봉사하라고 해놓고는 노골적으로 차별한 것입니다.
아메리카에는 파견된 부왕 170명 중 166명이 페닌술라레스이고 602명의 총독 중 14명만 끄리올요였다고 하니 끄리올요는 스페인의 서자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듯 왕실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을 버리고 스페인 왕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었을까요…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Persona, 희랍시대 고대 그리스의 배우들이 쓰는 가면)를 쓰며 관계를 이루어간다.”고 구스타프융은 말했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필요에 따라 가면을 바꾸어 썼고 그럴수록 왕실의 신뢰는 떨어졌습니다. 독립의 횃불이 아메리카에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페인 왕실이 좋은 가면만을 골라 썼다면 라틴아메리카는 스페인과 운명을 같이 했을까요…
라틴 아메리카의 안데스 줄기를 따라 여행을 이어가며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수록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역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필귀정이라는 틀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건가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의회의 연설 중 4번이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교황이 이민자의 땅에서 세상에 대고 전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이민자의 자식입니다.”였습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를 떠나 전 지구로 퍼져 새로운 지배자로 자리한 호모 사피엔스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지구상에 이민자가 아닌 원주민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국가가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 이민자가 주인인 양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요? 특히나 아리안의 대이동, 몽고리아의 이동, 흉의 서천과 게르만의 남하, 대 항해시대에 시작된 백인의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이주는 대규모로 이주해와 주인이 되어버린 사례가 아닌가요?
이주민은 원주민을 지배했고 주인이 되었으며 그들의 후손들은 주인으로서 다른 이주민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역사의 경험이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황의 메시지는 한 발 나아가보자는 격려인지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여행한 라틴 아메리카는 멋진 대륙입니다. 이민자의 자손임을 인정하고 이민자에게 호의적인 대륙이며, 새로운 인종이 생겨나고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대륙을 소개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직접 찾아가 봐야 했고 가보지 않은 곳이 많아 담을 수 있는 이야기보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또, 바쁜 여행일정이라 흘리고 놓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럴 때면 같이 간 분들의 조언과 의견이 부족한 공간을 메워주었고 다양한 시각이 사고의 치우침을 잡아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