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신라 성덕왕으로부터 양국 간 국교 재개의 선물로 귀여운 친을 받았다. 일본에 전래된 친은 독특한 외모에 마치 고양이 같은 깔끔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현지 귀족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받게 된다.
일본 보급 초기에 친은 권력층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은 평민들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게 된다.
친은 왜 일본에서 오랜 기간 동안 폭 넓은 인기를 받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친만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노트펫 친 |
첫째, 친의 아름다운 외모다. 친은 개를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한 눈에 반할 수밖에 없는 귀여운 얼굴과 날씬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둘째, 친은 털이 잘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실내견이 가져야할 가장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환모기만 되면 청소기와 테이프를 들고 다니는 개들을 키우는 분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친은 개 비린내라는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개는 좋아하지만 집에서 키우기를 꺼려하는 분들은 개 특유의 냄새가 싫다고 말씀하시는데 친은 그런 점에서 자유스러운 개다.
넷째, 친은 다른 견종에 비해 상당히 깔끔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친은 절대 지저분하게 주위를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친을 '고양이 같은 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친은 일본 귀족에서부터 서민까지 광범위한 사랑을 받게 된다. 페키니즈나 시추 같은 중국의 소형 삽살개들이 황족만을 위한 개였다면, 친은 모두의 개라고 할 수 있었다.
ⓒ노트펫 친 |
일본 역사 이야기를 잠시 하겠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정복이라는 헛된 야망을 달성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도요토미 사후 일본은 잠시 격렬한 혼돈에 빠지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재통일된다. 그 후 약 300여 년 간 일본은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한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평화시기가 정착되면서 일본인들은 취미 생활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친의 대중적 인기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심지어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는 친만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전문수의사까지 등장하고 친을 잘 키울 수 있는 전문 사육서까지 발간되어 유통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평화도 강력한 화력을 앞세운 미국의 대형 군함이 일본 항구로 몰려와 전면적인 개항을 요구면서 끝나게 된다. 1852년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은 도쿠가와 막부에게 항구를 열어 줄 것을 요구하지만, 당시 막부가 무대응과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재차 함대를 이끌고 와 일본을 압박한다.
결국 도쿠가와 막부는 미 함대의 막강한 위세에 눌려 1854년 3월31일 화친조약을 체결하며 개항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미국의 군함들은 상상 이상의 초자연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화친조약을 체결한 도쿠가와 막부는 페리 제독에게 애견 친을 양국의 우정과 화친의 상징으로 선물하였다. 아마 막부는 친이 양국의 영원한 우의를 다지는 마스코트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일본에서 친을 선물 받은 페리 제독은 그 중 일부를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도 선물로 바치고, 나머지 개를 미국으로 가지고 갔다.
참고로 당시 해가 가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영국의 지배자 빅토리아여왕은 포메라니언 개발에도 관여하는 등 유명한 애견가였다. 물론 페리 제독이 가져온 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페리 제독이 미국으로 가지고 갔던 친은 미국 애견가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다. 친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게 된 계기는 뉴욕 전람회 출품이었다. 전람회는 페리의 함대가 일본의 개항을 요구한지 정확히 30년 후에 열렸는데 당시 친은 재패니즈 친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소개되었다. 이후 미국 애견가의 높은 관심 덕분에 1912년 재패니즈 친 클럽까지 결성되게 된다.
역사적 사건 이후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따라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개들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애로우호 사건으로 촉발된 제 2차 아편전쟁 때문에 중국 황실견 페키니즈는 침략군인 영국군에 의해 영국 본토로 전래되었다. 이후 페키니즈는 중국 황실이 아닌 전 세계 애견인들의 사랑을 받는 애견으로 변모하게 된다.
친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신라 왕실에서 수교 복원의 선물로 일본으로 건너간 친은 일본의 개항으로 미국으로 전래되게 된다. 결과론적으로 페리 제독에 의한 일본 강제 개항으로 친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애견으로 변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두 사건 모두 열렬한 애견가였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