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는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던 종족들이 있다. 에스키모인과 몽고리안이 대표적이다. 유라시아 산맥의 오지마을 등 고립된 지역에서도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아내를 빌려 준다’. 한마디로 경을 칠 일이다. 아내가 무슨 물건인가. 물론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그런 풍습이 존재했던 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고립된 지역에서 불가피했던 근친혼의 후유증으로 인한 삶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들은 먼 길을 오가는 이방인에게 하룻밤을 재워주면서 바깥의 씨앗을 받는게 우생학적으로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근친혼의 폐해는 심각하다. 윤리적 문제를 떠나서 후세에게 신체적 기형이나,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게 만들고, 단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또 정신지체 등 열성인자의 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라의 쇠망도 통치 시스템인 골품제도의 유지를 위해 골품 내에서만 혼인을 한 탓에 지배계층이 유전적으로 퇴화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중세 유럽의 황제가로 불리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도 근친혼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몽고리안 등은 고육책을 선택한 것이다. 나름 생활의 지혜였던 셈이다.
문화인류학자로 유명한 마빈 해리스는 그의 저서 <문화의 수수께끼>를 통해 인류의 생활양식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야만인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근친혼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몇몇 인류의 풍습을 얘기했지만, 이제 반려동물의 근친교배 문제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동물들의 근친교배 심각성이 거론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다만 아직은 제한적 수준에서 머무를 뿐 크게 공론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돈벌이 수단으로 ‘강아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아무 생각없이 근친교배를 행하는 몰지각한 인간들로 인해 많은 강아지들이 기형과 질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 그렇게 태어난 강아지들의 대부분이 향하는 곳은 펫숍의 매장이다.
펫숍에서 구매한 강아지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으면서 낭패를 겪었다는 이들의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건 출산만 강요하는 인간의 만행과 근친교배의 후유증 탓일 가능성이 높다. 또 몇몇 펫숍으로 인해 상당수 정직한 펫숍이 도매금으로 평가받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유기견을 반려가족으로 맞이하는 것이 근친교배나 강아지 공장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란 생각이다. 강아지를 사지 말고 입양해야 하는 또 다른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