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신사 분이 고양이를 데리고 내원했다. 고양이는 이제 7개월이 된 페르시안 고양이로 이름은 코코라고 했다. 보호자는 코코가 요 며칠 변을 안 봐서 그런지 배가 부른 것 같다고 했다.
환자를 안아보니 등뼈가 쉽게 만져질 만큼 말랐지만 배가 처져있었고 출렁이는 느낌이 있었다. 복수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체온도 정상 보다 꽤 높았고 잇몸도 창백했다. 밥은 잘 먹었는지 물어보니 최근에는 사료는 잘 안 먹고 좋아하는 간식만 조금씩 먹었다는 것이다.
수의사 또는 고양이 좀 모신다는 집사들에게 코코의 증상을 말해주며 “왜 이럴까?”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FIP’라고 대답하며 안타까워할 것이다. FIP가 무엇이길래?
FIP는 'feline infectious peritonitis'의 약자로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을 일컫는다. 정확한 발병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양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FIP가 발병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양이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분변을 통해 경구 감염되기 때문에 고양이를 밀집 사육하는 곳에서 특히 감염률이 높고 1살 이하의 어린 고양이에게 주로 발생한다.
FIP는 주요 증상에 따라 복수나 흉수가 차는 삼출형과 전신 장기에 화농육아종성 염증을 유발하는 비삼출형으로 크게 나뉘는데 삼출형이 보다 흔하다. 특징적인 증상 들이 나타난 경우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FIP가 악명이 높은 원인 중 하나는 확진과 치료, 예방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FIP를 확진 할 수 있는 방법은 조직 생검 뿐이고 그 외의 방법으로는 증상과 혈액검사 소견, 항체 농도 등을 통해서 확진에 가까운 진단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치료 역시 증상을 완화 시키는 것이 전부이며, 비교적 새로 도입된 면역관련 약물들도 병의 진행을 지연 시킬 뿐 치료에 성공한 것은 없다. 예방백신은 나와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단순 변비인 줄 알고 내원하여 FIP라는 질환에 대한 설명을 들은 보호자는 매우 낙심하며 그런 무서운 질환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고양이를 키우는데 더 신중했을 것이라며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걱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떠났다.
'김진희의 심쿵심쿵'이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칼럼을 진행하는 김진희 수의사는 2007년부터 임상수의사로서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어린 반려동물 진료 분야의 베테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