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작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필자가 당시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세탁소가 하나 있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야하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은 직업이 주는 특성상, 2주일에 한 번 정도는 드라이 크리닝을 위해 세탁소 들릴 수밖에 없다. 필자도 그런 규칙에서 예외일 수 없는 존재여서 세탁소에 정기적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단골 세탁소 뒤편 후미진 곳에는 몇 개월 전부터 작은 이불이나 옷이 담긴 과일 박스 두어 개가 놓여 있었다. 박스의 정체와 그 안에 담긴 존재들의 용도가 궁금해서 세탁소 주인에게 사연을 물어 보았다.
주인은 “얼마 전 고양이 한 마리가 세탁소 앞에 와서 계속 운 적이 있었어요. 보아하니 배가 고픈 것 같아서 물과 먹을 것 조금을 내주었죠. 그랬더니 그 녀석이 다른 곳에 가지도 않고 계속 눌러 앉아 버렸어요.”고 하면서 그 다음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 물 한 잔 정도 얻어먹고 갈 것 같았던 고양이는 며칠 후 후 깜짝 놀랄만한 사건을 벌였어요. 한두 마리도 아니고 무려 여섯 마리나 되는 새끼 고양이를 낳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임신한 상태에서 춥고 배고파서 저희 집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인정 많은 세탁소 주인은 그 고양이와 한 식구가 되고 말았다. 그 분은 슈퍼마켓에서 과일 박스를 몇 개 얻어 가지고 와서 집에서 잘 입지 않는 옷가지를 밑에 깔아 주었다. 추운 겨울 어미와 새끼 고양이들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주인은 또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펫숍에서 고양이 사료도 구입하여 매일 주었다. 그렇게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새끼 고양이들은 세탁소 주인의 배려로 무럭무럭 자라 새끼 티를 거의 벗게 되었다.
세탁소 주인과 고양이 얘기를 나눈 후 2주 뒤 다시 세탁소에 갔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필자는 고양이들의 작은 보금자리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고양이집도 새끼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세탁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열흘 전에 어미가 새끼들을 버리고 어디로 떠났어요. 그리고 어미가 떠난 후 며칠 뒤 남아있던 새끼들도 모두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어요.”그 분의 말에는 약간 서운함이 느껴졌다.
야생의 상태에서 어미 고양이들을 새끼가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새끼를 두고 떠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자를 제외한 다른 빅캣들도 마찬가지다.
세탁소 주인의 노력 덕분에 여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은 무사히 자랐고, 그 녀석들은 자신의 고향인 세탁소 뒤편 후미진 곳을 떠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고양이들은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순리대로 움직인 것이다.
작년 봄 그 여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은 자기 어미와 같은 험난한 길고양이의 길을 가게 되었다. 비록 사람들에게 그렇게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 고양이도 귀한 생명체다.
늦었지만 세탁소와 인연을 맺은 어미 고양이와 여섯 마리 새끼들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