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목숨이 9개라는 속설이 있다. 얼마 전 이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파트 19층에서 떨어진 고양이 공주가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공주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공주는 동그란 얼굴에 접힌 귀가 매력적인 스코티쉬 폴드 고양이이다. 공주 보호자는 열대야에 시달리다 새벽에 베란다 창문을 방충망까지 모두 열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공주 밥을 챙겨 주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라는 것이다. 설마 하고 1층에 내려가 보니 공주가 화단 풀숲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깜짝 놀란 보호자는 그 길로 공주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왔다.
고양이 고소추락 증후군(Feline High-rise syndrome)은 고양이가 2층 높이 이상에서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높은 건물이 밀집한 도시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호기심 많고 집중력이 높은 고양이가 새나 벌레 나뭇잎 등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잡기 위해 뛰어 내리는 경우가 흔하다.
고양이 고소추락 증후군에서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우선 높은 생존율이다. 낙상 자체 때문에 24시간 안에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고 적절한 처치만 받는다면 생존율은 90%이상에 이른다.
또 한가지는 떨어진 높이와 부상 정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7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경우 가장 심하게 다쳤으며 오히려 이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우 부상 정도가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고층 건물에서 떨어져도 높은 생존율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은 바로 고양이의 낙하방법에 있다.
고양이는 낙하시 머리를 정자세로 유지하려는 정위 반사(righting reflex)를 통해 네다리로 착지한다. 이를 통해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분산하게 된다.
또한 몸을 마치 날다람쥐처럼 펴서 하강함으로써 공기의 저항을 최대화해 가속도를 낮춘다. 이 때문에 지면에 닿았을 때 충격이 최소화된다.
이러한 낙하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낙하시간이 필요한데 6-7층 정도의 높이에서는 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우 보다 부상 정도가 심해지게 된다.
고소추락 증후군에 의한 부상 부위는 뒷다리 골절이 가장 많고 폐의 좌상, 기흉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턱이나, 치아 등 두부 쪽 손상도 흔하기 때문에 전신 x-ray촬영이 필수적이다. 흉강 쪽 손상에 대한 처치로 산소를 공급하거나 흉관을 삽입하는 등의 처치를 받기도 한다.
자신 때문에 공주가 다쳤다고 자책하는 보호자에게 아직도 목숨이 8개나 남았으니 괜찮다고 농담반의 위로를 건냈지만 속설은 속설일 뿐 모든 생명에게 허락된 목숨은 하나뿐 이며 고양이도 예외는 아닐 테니 항상 안전사고에 유의해야겠다.
'김진희의 심쿵심쿵'이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칼럼을 진행하는 김진희 수의사는 2007년부터 임상수의사로서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어린 반려동물 진료 분야의 베테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