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로 입양하려고 점찍은 회색 길고양이를 만나러, 매일 밥 먹으러 온다는 작은 가게에 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 영역표시 하는 것을 보고 수컷인 줄 알았던 이 길고양이가 아무래도 최근에 출산을 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배가 홀쭉해졌고, 아마 근처에 아기고양이 보금자리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만약 아기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어미라면 우리가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아기고양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미의 젖을 떼면 독립해서 길고양이로 살아가야 하는 그 아기고양이들도, 이렇게 묘연이 닿았으니 가능하면 구조해 입양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중성화도 하지 않고 키우다가 버렸는지, 버려진 품종묘가 길에서 또 출산까지 했다는 게 짠하고 안쓰러웠다.
이 회색 고양이는 동네 고양이들이 캣맘의 밥자리에 밥 먹으러 오면 위협해서 쫓아내기도 한다고 했다.
버려진 뒤 6개월 동안, 길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했을 것이다. 아기들까지 지키려면 더더욱.
추워지는 날씨를 생각해서도 빨리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아기고양이를 발견할 때까지 지켜보기로 하고 몇 번인가 그 동네를 찾아가며 상황을 지켜봤다.
바로 며칠 뒤 신기하게도 캣맘의 가게 바로 맞은편에서, 거짓말처럼 새끼들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달려갔더니 아기 고양이는 세 마리였다. 그중 한 마리는 보통의 코숏 고양이와 달리 어미의 회색 품종 얼굴을 꼭 닮아 있었다.
생각보다 출산이 최근은 아니었는지 아기고양이들이 꽤 자란 상태였다.
최근에 이소를 하여 보금자리만 옮긴 모양이었다. 아기고양이들을 일단 구조하기로 하고, 캣맘들과 조심조심 접근하여 겨우 이동장에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미묘와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모두 무사히 품에 안겼다. 아기고양이 세 마리도 남매끼리 나란히 입양을 갔고, 회색 어미묘도 마침내 우리 집 둘째로 오게 되었다.
첫째 고양이 제이의 이름을 짓고 남은 신랑과 내 이름의 이니셜 두 개를 조합해 ‘아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집에 온 첫날, 아리는 침대 밑에 몸을 반쯤 넣고 집안 분위기를 살폈다.
기존 고양이가 있는 집에 새 고양이가 오는 합사 과정은 영역동물인 고양이 특성상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방을 격리시켜 서로 냄새만 맡게 해주었고, 다행히 2-3일 만에 둘 다 무난히 적응해주었다.
슬슬 집안을 돌아다니는 걸 보고 침대 위에 올려줬지만 휙 내려가 버리기에 전에 살던 집에서는 침대 위에 안 올라갔나 싶었다.
캣맘의 말로는 남자를 유난히 무서워한다고 했다. 예전에 있던 집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길 생활 중 안 좋은 기억이 생긴 탓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는 법도 없었다. 한때는 틀림없이 사랑받던 과거가 있었을 듯했다.
그 외에 내가 아는 것은 2~3살 추정의 중성화하지 않은 암컷, 고운 회색 털을 가진 스코티시 스트레이트 종(아마도)이라는 것 정도였지만 우리는 과거 모를 이 고양이에게 강력한 신호를 느꼈던 것 같다.
인연을 맺는 데 느낌만큼 분명한 게 있을까.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만났어도 막상 사귀다 보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마냥 순둥이인 줄만 알았던 아리는 어느덧 우리 집 서열을 다 평정하고 아무 데나 발라당 배를 까고 누워 있는 팔자 좋은 고양이가 되었다.
길 위에서 출산도 했던 씩씩한 엄마로서의 시간은 다 잊었는지 툭 하면 장난감을 물어와 어리광(혹은 명령)을 부린다.
아리를 보면 문득 생각한다. 그때는 어쩌다, 왜 길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을까?
길에서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떤 일이 있었기에 남자를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아리의 새끼고양이 시절을 함께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아리를 버리거나 혹은 잃어버리게 된 걸까. 아리는 과거에 어떤 시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과거 있는 연애는 그만큼 조금씩은 성숙해져 있다. 다만 서로의 과거는 묻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나도 과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여친처럼 굴고 싶지만, 발라당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뒹굴거리는 아리를 보고 있자면 구차하게 자꾸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지긴 한다.
나의 이중적인 심리가 웃기지만, 더불어 아리 스스로는 과거 따위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중요한 건 지금과 앞으로의 우리니까.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