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면서 새 패브릭 소파가 스크래치로 너덜너덜해져도,
책장 위의 작은 소품이나 말린 꽃다발 같은 걸 일부러 툭툭 치며 떨어뜨려도,
화장실은 베란다에 있는데 이상하게 안방 침대 위가 모래밭이 되어도, 그래도 괜찮았다.
너는 고양이고, 여기는 사람을 위해 지어진 집이니 서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어쩔 수 없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많은 것을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그래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있었다.
집에 온 첫날부터 집안을 한 바퀴 휘 돌아보며 밥 먹는 자리,
화장실 가는 자리를 확인하고는 야무지게 모래에 볼일을 봤던 제이가 어느 날 침대 위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불을 왜 앞발로 박박 긁는 거니…?
뒷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으로 다가갔더니 역시나. 뜬금없이 이불 위에 오줌을 싼 것이었다.
제이는 내가 다가오자 모래 덮는 제스처를 멈추곤 뾰롱 도망가 버렸다. 고양이가 오줌테러를 하면 곤란한 집안 가구 중 일 순위가 바로 침대가 아닐까?
보통 침대 매트리스 위에 패드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까는데 아무리 두꺼운 이불이어도 그 위에 고양이가 오줌을 싸면 매트리스까지 스며든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혼집 매트리스를 노랗게 물들여놓고 제이는 반성하는 기미 없이 2차 범행을 노렸다.
침대 위에 올라올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주시했지만 나의 방어력이 약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또 이불 위에 오줌테러. 비싼 걸 알고 그러나….
고양이는 원래 따로 배변훈련을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모래 화장실을 사용하는 동물이다.
야생에서 배설물을 모래나 흙으로 덮어 자신의 흔적이 다른 동물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설물을 감추는 것은 고양이의 본능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습관인 셈인데,
대놓고 보란 듯이 ‘오줌테러’를 하는 건 어쨌든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이유 몇 가지를 추측해보면 아래와 같다.
- 스트레스
이유로 추측해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스트레스.
이사 등의 환경 변화나 집의 구성원 변화 등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모래나 화장실에 대한 불만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고양이 화장실은 ‘반려묘 마릿수+1개’가 적당하며 하루에 한 번은 꼭 치워주고, 주기적으로는 전체갈이를 해주어야 한다.
개방형 화장실을 쓰고 있다면 동굴형으로, 동굴형을 쓰고 있다면 개방형으로 바꿔보는 것도 방법.
혹은 화장실이 청결하지 못하거나, 모래에 불만이 있거나, 밥 먹는 곳과 너무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있거나,
화장실의 위치가 너무 개방되어 있어 신경이 쓰이는 등 다양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수 있으니,
기존 상태를 잘 살펴보고 하나씩 개선하며 관찰해 보면 의외로 금방 해답이 나올 수도 있다.
- 의학적인 이유
고양이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 중 하나가 하부요로계 질환이다.
특히 물을 잘 먹지 않으려는 습성 탓에 요로결석, 방광염, 신장 질환 등이 발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체적인 불편이 관찰되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화장실을 빈번하게 들락거리지만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 볼일을 볼 때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경우,
불편한 자세를 취하는 경우, 혈뇨가 보이는 경우, 그리고 갑작스러운 배변 실수가 나타나는 경우 의학적 원인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 스프레잉
바로 영역표시. 자신의 영역이 침범받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 때 주로 나타나는 행동이므로,
집에 새로운 동물을 입양했거나 창밖에 낯선 고양이 냄새가 나기 때문일 수 있다.
고양이 입장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프레잉하는 행동 자체를 혼내기보다는 빨리 원인을 파악해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제이의 오줌테러는 원인이 뭐였을까? 입양 초반도 아니고, 이사한 것도 아니고, 중성화도 마쳤고, 둘째 아리를 입양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나도 혼란스러웠다.
보통 원인이 없어지면 다시 화장실을 잘 이용하기 마련이지만, 집안 아무데나 오줌을 싸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그것이 습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빨리 민원을 해결해주는 것이 사건 종결의 핵심.
나의 경우는 일단 개방형 화장실을 쓰고 있던 걸 동굴형으로 새로 사줬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시간을 늘려보았고,
외출할 때는 안방 문을 닫아두는 것으로 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화장실을 바꾼 게 도움이 되었는지 제이의 오줌 테러는 두어 개의 매트리스 얼룩을 남긴 채 금방 끝났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제이도 내가 집을 비울 때에도 침대 위에서 잘 수 있게 되었으니 서로 윈-윈으로 맺은 타협이 또 어느 날 깨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