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중학생이었는데, 와일드한 성격의 요키(요크셔 테리어) 암컷 한 마리(이름: 앤짱)와 귀엽고 애교 많은 푸들 암컷 한 마리를 각각 키우고 있었다.
개들은 무리 내 서열이 확실한 늑대의 후손이다. 그래서인지 두 마리도 자기들끼리의 서열이 확실히 있었다. 덩치는 작지만 용맹한 성격의 요크셔 테리어가 귀여운 푸들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밥을 먹어도 요크셔 테리어가 먼저 먹었고, 주인이 외출을 했다가 귀가를 할 때도 요크셔 테리어가 먼저 주인에게 안기는 우선권이 있었다.
가련한 푸들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푸들은 평소 그런 자신의 서열과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간혹 푸들이 무리 내 서열을 파괴하려고 하면 요크셔 테리어는 곧바로 응징했다. 물론 응징 수준이 무섭지는 않았다. 푸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캉"하고 짖으면 푸들은 꼬리를 내리고 숨기 바빴다.
5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무더위가 막 시작하려는 시기였다. 거실 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마루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찍찍"거리는 소리였다.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이 막바지에 이를 때 내는 소리였다.
곧바로 그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갔다. 놀랍게도 요크셔 테리어가 마당 한 구석에서 쥐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정확하게 쥐의 목을 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크셔 테리어는 쥐를 살짝 내려놓았다. 쥐가 비틀거리면서 움직이려고 하자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장난치듯이 물고 양 옆으로 흔들어댔다.
그런데 푸들은 그런 광경이 무서운지 요크셔 테리어 뒤에서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않은채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날 이후 요크셔 테리어는 쥐 사냥에 재미를 붙였다. 심심하면 마당에서 쥐를 잡고 다녔다.
필자의 기억으로 20~30마리 정도는 족히 잡은 것 같다. 물론 푸들은 단 한 마리의 쥐도 잡지 못했다. 당시 서울의 단독주택가에는 이렇게 쥐가 많았었다.
그런데 요크셔 테리어는 원래 쥐 사냥개일까?
영국인들이 요크셔 테리어를 개발한 목적은 간단했다. 쥐를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공장, 창고 같은 비좁은 실내 공간에서 쥐를 잡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0년대 초반 서울의 어느 단독주택에서 쥐 사냥에 빠져있던 그 요크셔 테리어 앤짱은 영국인들의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개였다.
지금은 도시민 대다수의 거주형태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어서 쥐를 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은 달랐다. 그때는 쥐가 흔했다. 그런데 쥐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서운 포식자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우리 집은 요크셔 테리어의 맹활약으로 더 이상 쥐를 보기 힘들었다. 아마 우리 집에서 살던 쥐들은 이웃집으로 이주한 것 같았다.
본의 아니게 남의 집에 폐를 끼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