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술은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무서운 술이다. 해장술은 원래 숙취를 풀어주는 술이란 뜻의
해정술이 맞는 말인데, 부르기 편한 해장술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해정술이라는 원래의 이
름이 사실상 밀려버린 셈이다.
영국에서는 해장술을 ‘개털(Hair of the dog)’이라고 말한다. 개에 물려 상처가 났을 때, 자신
을 물었던 개의 털을 뽑아 상처에 덧대면, 아픈 게 낫는 다는 속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샤머니즘이 지배했던 고대사회의 풍습이기도 했다.
영국 술꾼들은 이 속설을 따라서 전날 술을 마셨던 술집을 다시 찾아가 해장술을 들이키면 숙
취가 해소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엉뚱함을 넘어 생뚱맞기조차 하다. 술꾼들이 술을 더 마시
기 위한 합리화인지, 술집의 장삿속인지 헛갈리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영국의 나자렛(Nazareth)이란 록 그룹이 ‘개털’이란 제목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이
름으로 간판을 단 술집도 있다는 것을 보면 그 곳에선 일상으로 쓰이는 말인 듯싶다.
두 해 전인 지난 2013년 미국의 CNN 방송에서 뽑은 ‘술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 순위에서 영국
은 러시아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었다. 영국인들의 광란적 폭음 파티도 유명하다. 그런
만큼 해장술의 별칭도 딱 그 수준이다.
‘마이클 매크로운’이 쓴 <미국 해장술은 개털이다>라는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것을 보면
미국에서도 해장술이 ‘개털’로 불리는 것 같다. 앵글로 섹슨 족인 영국인이 미국으로 이주해
살아 온 사실을 떠올리면 두 나라가 함께 해장술을 ‘개털’로 부른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해장술은 아무나 마시나 ‘범털이면 범털이지, 왜 개털인가’, 이 또한 견공의 비애가 아
닌가 싶다. 해장술을 운운했더니 살짝 취하는 느낌이다. 글 멀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