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잠시 임시보호해서 입양 보낸 새끼고양이가 있었는데, 이 녀석은 이동장에 들어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지퍼가 채 닫히기 전에 그 자그마한 몸집을 놀랄 만큼 재빠르게 움직여 미끄러지듯 빠져나오곤 했다. 두세 번의 파양을 겪은 아이라 자주 집을 옮겨 다닌 탓일지도 몰랐다.
우리 집에서 지내다 마지막에는 드디어 입양을 가게 되어서 이동장에 넣어 보내려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거실에서 잠깐 문을 조금 연 틈에 쏜살같이 이동장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평소에는 그리 순하던 아이가 이동장에만 들어가면 호시탐탐 탈출을 노리는 탓에, 입양처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혹시나 싶어 나도 긴장한 채 기다려야 했다.
평소에 훈련이 잘 되지 않으면 유난히 이동장을 질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산책을 하지 않아 외출할 일이 많지 않은 고양이들이지만, 이동장에는 어릴 때부터 적응시켜두는 것이 좋다.
이동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으면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때, 특히나 긴박한 응급상황이 있을 때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고양이를 이동장에 익숙해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이동장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 플라스틱 등 재질도 다양하고 모양도 여러 가지인데 동물병원에서는 주로 상, 하단이 분리되는 이동장을 추천하는 것 같다.
동물병원 같은 낯선 공간에서 이번에는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고양이들을, 이동장 안에 둔 채로 상단을 분리해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동장을 비교적 편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평소에 이동장을 생활공간 내에 꺼내놓는 것이 좋다.
평소에는 안 보이는 곳에 넣어놨다가 동물병원에 갈 때만 이동장을 꺼낸다면,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이동장=싫어하는 곳’이라는 공식을 세워버린다. 이동장이 꼭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쓰는 게 아니라, 평소에 익숙한 장소로 느껴지게 해주면 아무래도 거부감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는 담요, 냄새가 묻어 있는 방석 등을 이동장에 깔아주고 더불어 이동장 근처에서 놀이를 해주자.
이동장 구멍으로 깃털을 넣었다 뺐다 하는 등 이동장 안에서 놀이 시간을 가지다 보면 조금 더 친숙한 장소가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간식을 주거나 캣닢을 뿌려주는 것도 좋다.
다음 단계는 실내에서 이동해보는 것. 이동장 문을 살포시 닫아도 별 반응이 없다면 이동장을 들고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런 식으로 평소에 틈틈이 이동장 훈련을 해두면 실전(?)에서도 보다 수월해진다.
우리 집은 이동장을 평소에 꺼내 놓고 지내서, 두 고양이가 한 마리는 안에 들어가고 한 마리는 밖에 지켜 서서 놀거나 싸우기도(?) 한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제이는 모든 종류의 이동장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어릴 때부터 병원에 다니느라 워낙 자주 사용해 익숙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아는 언니가 이사 가면서 우리 집에 짐 몇 개를 맡겨놓고 갔다. 그중에는 새로 산 고양이 이동장도 있었다.
가방처럼 생긴 이동장에 투명한 원형 창문이 달려 있는 일명 ‘우주선 이동장’인데, 이사 가는 날 신경이 날카로워진 언니네 고양이가 안타깝게도 그 새로 산 이동장에 도저히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서…… 결국 내 이동장을 빌려가고 새 것은 우리 집에 잠시 남겨두고 가게 된 것이다.
덕분에 언니의 허락을 받고 내가 먼저 개시를 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제이가 동그란 창문 밖으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 짧은 산책의 종착점도 동물병원이라 못내 미안했지만.
이동장에서 보는 바깥세상은 어떨까? 굳이 산책을 원하지 않는 영역동물이라지만, 잠시나마 이동장으로 바깥 구경을 하는 시간이 고양이들에게도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